바라보니 머리는 장발에다 교복도 아닌 이상한 복장으로 고분고분한 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예사롭지 않은 학생임에 틀림없었다.
학생과장의 훈계를 받고 있는 학생이 대들 것 같은 기세로 소리를 버럭 질렀다.
또 이어 선생님을 메다붙일 기세로 책상을 뻥 치는 것이 아닌가?
분이 덜 풀렸는지 "이까짓 학교 안 다니면 될 것 아냐!" 하며 교무실 문짝을 메다붙이듯이 하며 튀기쳐나가는 것이었다.
그걸 보는 순간 가슴이 덜컹하며 겁부터 났다. 조폭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자고등학교에서 순한 양들만 보다가 갑자기 난폭한 야수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학생이 제발 내 반 학생이 아니기를 속으로 빌며 교실에 들어갔는데 그 학생이 내 반 뒷자리에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교무실서 난동 부리던 그 학생을 내가 담임이라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 그저 얼떨떨하기만 했다.
담임으로서 첫마디 입을 열었다.
"여러분, 이렇게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리 힘을 모아 1년간 열심히 공부해 봅시다. 어느 누구라도 화려했던 과거나 부끄러웠던 과거가 있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는 과거가 없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과거 죽을죄를 졌더라도 현재 잘 해 보려는 개과천선의 의지만 있으면 됩니다. 필경 여러분들이 어두웠던 과거가 있더라도 나는 색안경을 끼고 보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여기 있는 여러 분 모두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젊은이들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 담임인 나를 중심으로 여럿이 아닌 하나가 되어 최선을 다해주기 바랍니다."
이 같은 담임 소신얘기로 희망을 갖게 했지만 내심은 문제학생이 바로 내 반에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희망을 주고 개과천선을 바라는 뜻에서 한 이야기였다.
내 반에서 제일 신경 쓰이는 학생은 바로 교무실서 난동을 부리던 J○○이었다. 거물 하나 지도하는 것이 학급 전체 학생을 신경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그 동안 이 학생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늘 사고만 치고 질책만 받아왔기 때문에 칭찬이나 인정받는 생활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섣부른 지도를 했다간 학생을 영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는 학생의 장점이나 재능을 찾아 칭찬해주는 지도로써 새사람 만들어 보겠다는 결심이 섰다.
1주일 정도 생활하면서 관찰하고 상담을 했다. 얻어낸 결과는 학생이 공부는 못하지만 의리가 있고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한다는 장점을 찾아냈다.
하루에 한 가지씩 칭찬거리를 찾아 고무적인 얘기로 기를 살렸다. 그 동안 칭찬이나 인정을 받아보지 못한 학생이라서 그런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표정도 밝아지고 생각 자체가 조금씩 긍정적인 무늬로 바뀌어가는 느낌이었다.
2주째부터는 신발장 청소 임무를 맡겼다. 그게 효험 좋은 약이었던지 신발장청소를 깨끗이 해 놓았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극찬으로 인정감을 주었다. 인정과 칭찬이 약발이 선 듯 답례가 밝은 표정, 고분고분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칭찬으로 기를 살리고 꿈을 갖게 하는 것이 학생 살리는 길이라는 확신이 섰다. 영약은 다른 것이 아닌 칭찬과 인정감이라는 것을 터득했다.
영약 덕분인지 4개월 정도는 탈 없이 지냈다. 선장이 기대하는 소망대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아 나도 힘이 생겼다. 아니, 용기까지 솟아나는 기분이었다.
칭찬이 족쇄가 되어 놀라운 변화가 오는 것 같았다.
한동안 잔잔했던 바다에 어느 날 파도가 덮쳐왔다. 이 거물이 옆 반 친구와 합세하여 집단 구타하는 일을 저질렀다. 학생과{요새 학생부)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중징계를 받게 생겼다. 그 동안 사고를 쳤던 잘못이 누가 기록되어 가중처벌로 중징계를 면할 수 없게 됐다. 퇴학 무기정학 운운하는 얘기까지 나오는 것이 심상치 않았다.
학부모를 오시도록 연락했다. 학생의 어머니가 울상이 되어 나타났다.
나도 맥 빠진 얼굴로 울상의 여인을 쳐다보았다. 꾀죄죄한 모습에 촌티까지 질질 흐르는 농사꾼 아낙 같았다. 어쩌면 촌에서 농사짓던 우리 어머니 모습을 보는 듯했다. 촌티 나는 소박한 어머니가 입을 열었다.
"남편 일찍 죽고 청상과부로 새끼 ○○이 이거 하나 키우는 걸 유일한 희망으로 살아왔는데 이놈의 새끼가 또 일을 저질렀습니다. 제발 우리 ○○이 퇴학만 시키지 말고 졸업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애비 없이 불쌍하게 컸지만 ○○이가 제 유일한 희망입니다. 또 제가 사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제발 용서해주시고 졸업만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우리 담임선생님 제발 우리 ○○이 버리지 말고 살려 주세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옛날 장독대에 정화수 떠 놓고 빌던 우리 어머니 간청의 기도 소리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 어머니 같은 초라한 모습에 가슴이 저려왔다.
순간 교직생활 시작할 때 다짐했던 교사로서의 신조 - 수업 준비 잘해서 알찬 내용 가르치기. 생각 한 번 잘못해서 학생을 피해자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 는 '죄를 덜 짓는 교사가 되자 '는 그 신조가 클로즈업되어 나타났다.
내 어떤 어려움이나 희생이 따른다 해도 내 어머니 같은 초라하고 촌티 나는 여인을 울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담임한 J○○ 학생을 낙오자나 탈락자로 만들지 않고 반드시 졸업시키겠다고 다짐을 굳혔다.
징계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교장·교감 선생님을 찾아뵙고 담임 소신을 말씀드렸다.
"이번 사건 학생 J○○은 정말 불쌍합니다. 어머니는 그 숱한 고생 다해가며 아들 하나 키우는 걸 유일한 희망으로 살아온 미망인입니다. 또 학생 J○○은 어머니의 삶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J○○ 교육을 포기한다면 두 사람을 모두 죽이는 결과가 됩니다. 학생 어머니의 초라한 차림이며 하고 온 모습을 보니 옛날 제 어머니 같은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J○○ 학생은 담임인 제가 책임지고 지도하겠습니다. 저를 믿어주시고 제발 퇴학만은 아닌 선처를 해 주십시오."
교장·교감 선생님은 잠자코 듣기만 하더니 빙그레 웃으시는 것이었다. 간절한 요청에 마음이 약해지셨는지 "남 선생님만 믿고 퇴학은 시키지 않겠습니다. 부디 새사람 좀 만들어 주십시오" 했다.
이렇게 어렵게 공부한 J○○이 드디어 졸업을 하게 됐다. 내 어머니 같은 초라한 차림의 학생 어머니가 졸업식날 인사를 왔다. 옆에는 말썽쟁이 J○○이 서 있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우리 ○○이가 선생님 덕분에 졸업합니다. 선생님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옆에 서 있는 말썽쟁이에게 하는 말이…… "야 이놈의 새끼야! 남선생님은 네 평생 은인이야. 평생 감사하며 살아야 돼."
이 한 마디를 남기고 졸업식장을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세월은 흘러 ○○이가 졸업한 지 25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2008년 12월8일 내가 TJB 방송국에서 제10회 TJB교육 대상을 받는 시간이었다.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해서 바라봤더니 80년대 고3때 문제아로 어렵게 했던 J○○이었다.
"너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왔니?" 했더니 서산서 돌아다니다가 소문 듣고 왔다는 것이었다. 촉박한 시간이어서 대절택시로 왔다는 것이었다.
또 한 번은 을지병원 장례예식장의, 교통사고로 세상 뜬 아내의 영결식에도 J○○ 제자가 또 나타났다. 이틀간 밤샘까지 하고 장지까지 왔다 갔다.
풍문에 제자가 주먹세계의 명성이 있는 자라 해서 만날 때, 전화받을 때마다 교화시키는 얘길 해서 지금은 손 씻고 새사람이 되어 산촌에 묻혀 살고 있다.
내 큰일이 있을 때는 꼭 나타나는 제자 !
기쁜 일이나 슬픈 일에 있을 때 마음을 같이해 주는 J○○ !
그 맵고도 추운 설한풍 속에 가꿔 온 따뜻한 가슴, 사람냄새에 찬사를 보낸다.
세상 제일 소중한 것을 터득하기 위해 한 때의 말썽쟁이로 살았던 불사조의 넋!
한숨으로 얼룩진 인고의 세월 속에서도 정말 중요한 걸 놓치지 않아 자랑스럽구나.
내 잘한 게 딱 하나 있다.
내 담임한 어느 누구 탈락 하나 없이 사람냄새 풍기며 사는 장한 모습들이기에…….
그게 교직 생활의 총결산이며 자랑이기에 '내 잘한 것 딱 하나 있다'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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