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대전 코로나19예방접종센터에서 자신의 접종 차례를 기다리는 어르신들 모습./사진=홍경석 |
홍수환 선수가 복싱에서 4전 5기의 신화를 쓰면서 세계 챔피언에 올랐을 때 한반도는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로 뒤집어졌다. 차범근 선수가 독일을 호령하는 강호로 활약할 때도 국민적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김일 선수의 박치기는 그보다 먼저 우리 국민을 한 덩어리로 묶어준 대동단결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지금껏 열거한 축구, 야구, 복싱, 레슬링이라는 스포츠에서도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이들 종목에서도 최대의 관심과 관건은 승패는 후반전에서 갈린다는 것이다. 아무리 시작은 잘했어도 끝이 안 좋으면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된다. 스포츠 역시 별반 다를 바 없다.
전반전에는 항우장사보다 더 열심히 잘도 뛰었건만, 후반전에 접어들자 기진맥진한 부진이 눈에 띈다. 그러더니 결국엔 패배로 기록된다. 이런 경우, 실망은 당연히 순식간에 확산된다.
지금 우리나라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7개국 가운데 최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한 마디로 전반전과는 사뭇 달리 후반전에서는 지지부진하고 있다.
국민의 실망과 우려가 묵직하게 교차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인구 100만 명 이상인 129개국 중 이스라엘은 접종률 61.7%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덕분에 이스라엘 국민은 마침내 마스크에서 해방되었다.
코로나 이전의 일상을 되찾은 그들의 모습을 외신에서 보면서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토록 고대했던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가 최근 대전에서도 문을 열었다.
대덕구 중리동에 있는 청소년어울림센터 2층 체육관에 설치된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의 개소를 맞아 반가운 마음에 취재했다. 오전 10시에 찾았는데 벌써 많은 노인과 어르신들께서 자신의 접종 차례를 기다리고 계셨다.
"지겨운 코로나 때문에 명절과 생일에도 만날 수 없었는데 접종을 마치고 나면 그리웠던 가족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나누는 어르신들을 뵈니 가슴이 뭉클했다.
요양원에 모신 부모님을 마음대로 찾아뵐 수 없어 눈물짓던 친구가 떠올라 더 처연했다. 예방접종센터 입구에서 철저한 자동체온측정과 손 소독을 마친 뒤 입장을 했다.
예방접종센터의 가운데는 '안전하고 소중한 일상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붙어 있었다. 불현듯 외출조차 못 하시는 팔순의 숙부님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서 코로나가 종식되어야 숙부님을 찾아뵙고 맛난 음식도 사드릴 수 있을 텐데…….
우리나라는 세계 수출 6위로, 수출 강국이라는 자부심이 우뚝한 국가이다. 비록 좁은 땅덩어리에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척박한 환경이다.
하지만 한국인 특유의 집념과 투지로 일궈낸 뛰어난 기술력은 전 세계적으로도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반도체 하나만 보더라도 얼마나 국가적 효자상품인지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반면 후반전 들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표자정규(杓子定規)의 답답증을 느끼게 한다. 이는 무엇이든지 하나의 규칙(規則)이나 척도(尺度)에 맞추려고 하는 융통성 없는 태도를 의미한다.
한국은 코로나 초기엔 세계 각국에서 방역 모범국가로 인정받는 수훈을 세웠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백신의 적시, 적극 도입에 지나치게 좌고우면(左顧右眄)한 때문이다.
코로나는 전쟁이다. 그래서 빠른 결단이 관건인데, 인생은 후반전인데…… 상식이지만 전반전에 잘 못 하다가도 후반전에 역전하면 기쁨은 배가되는 게 경험의 교훈이다.
홍경석 / 작가·'초경서반' 저자
* 홍경석 작가의 칼럼 '홍키호테 世窓密視(세창밀시)'를 매주 중도일보 인터넷판에 연재한다. '世窓密視(세창밀시)'는 '세상을 세밀하게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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