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는 竊(훔칠 절)과 鉤(갈고리 구)와 國(나라 국)으로 조합된 성어이다.
출처는 장자(莊子)의 거협편(莊子 ??篇)에서 볼 수 있다.
비유로는 좀도둑(갈고리 훔친 자)은 큰 벌을 받고, 큰 도둑(나라를 훔친 자)은 부귀를 누린다는 뜻이기도 하고, 또한 법율 및 제도의 허구성이나 불합리함을 비유하기도 한다.
중국의 戰國時代(전국시대, BC 403년~221년) 때의 사상가 莊周(장주/장자라고 함)는 그의 활달한 성격에 맞게 도덕이나 지식, 문명 등의 부정적 측면을 잘 풍자했다.
그는 성인이나 지식인들은 위정자(爲政者)라는 큰 도둑을 위한 파수꾼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장자는 상자를 열고 궤짝을 뜯어 물건을 훔치려는 도둑에 대비하려면 그 상자를 줄로 꽁꽁 묶어야 하는데 오히려 큰 도둑이 오면 상자를 통째로 훔쳐 간다. 그러니 지혜로 상자를 잘 간수한다는 것은 큰 도둑을 위해 물건을 모아주는 것이 된다는 설명이다.
아무리 성인이 잇달아 나와 세상이 잘 다스려진다 해도 그것은 盜?(도척/중국역사상 최고의 도적)과 같은 큰 도둑만 이롭게 해 줄 뿐이다. "조그만 쇠갈고리를 훔친 사람은 도둑질 했다고 목이 베이지만, 나라를 훔친 큰 도둑은 왕(王)이 된다.(彼竊鉤者誅 竊國者爲諸侯/ 피절구자주 절국자위제후)"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결국 좀 도둑은 큰 벌을 받고 큰 도둑은 권력과 부귀를 누린다. 이렇게 시비나 상벌이 공평하지 못하고 지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꼬집은 말은 많다. 높은 벼슬아치가 갖가지 뇌물과 세금으로 재물을 탐한다는 '사모 쓴 도둑놈'이나, 아래 사람들의 부정행위는 엄격히 다스리는 척한다는 '큰 도적이 좀도적 잡는 시늉 한다' 등의 속담이 있다. 이것에 훨씬 더하여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아도 성공하면 왕이 되었으니 공정을 말할 수가 없다. 권세나 돈이 많은 자들이 저지르는 부정이나 부패를 법대로 처벌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가 국민을 위한 것으로 포장되고 불법조차도 합리적인 정책으로 둔갑하여 국민을 기롱하는 큰 도둑이 되는 것이다.
국민의 힘으로 세상이 바뀌었어도 돈의 힘으로, 또는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권력의 연줄로 법의 틈을 헤집어 빠져나가는 일이 숱했기 때문이다. 장자의 작은 도둑, 큰 도둑 이야기는 오늘날도 여전한 셈이다.
바늘을 훔친 자는 감옥에 가지만, 나라를 훔친 자는 왕이 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이르길, '물고기가 물속에 몸을 감추듯, 나라에 이로운 물건(國之利器)도 남에게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똑똑한 사람들도 세상을 이롭게 하는 물건이기 때문에 남에게 드러내면 안 된다. 그래서 똑똑한 사람을 없애고 지혜를 버리면[絶聖棄知] 큰 도둑이 들지 않고, 옥구슬을 버리고 진주를 깨뜨리면 작은 도둑이 들지 않는 것이다.
부적을 불사르고 옥새를 부수면 사람들이 순박해지고, 됫박을 쪼개고 저울을 부러뜨리면 서로 다투지 않을 것이다.
한편 어찌 되었던 나라라는 큰 물건을 훔치고 나서 그 나라와 백성들의 평안과 안녕을 위하여 제 한 목숨 바친다면 그 도둑은 그야말로 왕의 자격이 있는 도둑이고 내내 백성들의 칭송은 물론 역사에도 큰 인물로 기록될 것 이다.
그러나 현대의 큰 도적들은 대부분의 혁명을 통해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 자들의 말로는 백성을 학정에서 구제하기 위하여 하늘의 뜻(민심)에 따라 전 왕조를 멸망시키고 그 나라를 훔쳐 새로운 지도자로 탄생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수많은 불합리와 불법, 자기 합리화가 숨겨져 있지만 승자의 찬란한 거짓에 가리어져 역사 속에 숨겨지고 마는 것이다.
사람들의 눈이 정말 밝아지면 세상은 어두울 게 없다. 사람들의 귀가 정말 밝아지면 세상은 시끄러울 게 없다. 사람들이 제대로 알면 세상에 미혹될 게 없다. 사람들이 제대로 일하면 세상에 치우칠 게 없다.
결국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 기망에 현혹되어 그 도적의 편이 되지만 점차 실상을 알게 되고 그들의 의롭지 못한 행동에 등을 돌리게 되며 새로운 지도자를 갈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매번 폐단의 악순환의 경우를 겪고 있지만 권력 말기에 보이는 무능과 불합리 뿐인데 정작 저지러놓은 자들은 책임이 없고, 결국 잘못된 큰 도둑질이 국민의 고통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고등학교 한문 교과서에 실렸던 노자(老子) 도덕경이 명구(名句)를 주목하게 된다.
大道廢, 有仁義(대도폐, 유인의)/대도가 망가지니 인의가 있게 되고
慧智出, 有大僞(혜지출, 유대위)/지혜가 생겨나니 큰 거짓이 있게 된다.
六親不和,有孝慈(육친불화, 유효자)/가정이 불화하니 효성이나 자애가 필요하고
國家昏亂, 有忠臣(국가혼란, 유충신)/국가가 혼란하니 충신이 있게 된다.
'효도하라! 자애롭게 자식을 대하라' 라는 도덕적 명제가 근원적으로는 육친이 불화하니까 생겨나는 것이다. 육친이 불화하지 않으면, 효도니 형제간의 우애니 하는 근원적 본질을 의식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또 충신이 있다는 것은 이미 그 국가가 혼란해졌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충신을 절대적으로 숭상할 필요는 없다. 그 국가를 혼란치 않게 만드는 근본대책이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충신을 만들려고 도덕교육을 시킬 것이 아니라, 충신이 나올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데 헌신할 수 있는 큰 인물을 키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장상현/ 인문학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