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석 소설가 |
"새벽, 겨우겨우 라도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햇살을 볼 수 있기를/ 아무리 천대받는 일이라 할지라도/ 일을 할 수 있기를/ 점심에는 땀 훔치며/ 퍼져 버린 한 끼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기를/ 저녁에는 쓴 소주 한잔 마시며/ 집으로 돌아오는 기쁨을 느낄 수 있기를/ 타인에게는 하잘것없는 이 작은 소망이/ 내게 욕심이라면, 정말 욕심이라면/ 하나님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소망' 시집 <흐르는 눈물을 스스로 닦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에서.
그는 13살에 온몸이 돌처럼 굳어가는 희소병으로 방구석에 갇혔다. 20살을 못 넘길 거라고 의사들이 말했을 때, '이대로 보낼 수 없다'라는 부모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그는 49살까지 살았다. 내가 아는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살피랴, 화장품 외판원 하랴, 그의 아버지는 연탄배달 막노동에 환경미화원까지, 그들 삶도 버거웠을 건데….
"요것 먹어라."/ 오늘도 막노동으로 하루를 끝마치고/ 어둑어둑해져서야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께서/ 불쑥 내미신 새참 우유/(중략)/어느덧 칠순을 바라보시는 아버지,/ 당신의 등골을 휘게 한 막노동은/ 한잔 술로 잊으면서도/ 당신의 새끼는 결코 잊지 못해/ 자식이란 놈의 눈시울을/ 콕콕 찌른 그 우유는 바로/ '부모'였습니다./ 아버지도 목이 마를 텐데/ 새참 우유/ 이젠 집에 가져오지 마세요." -'부모' 산문시집<아버지, 울었습니다>에서
사실, 나는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에야 편견을 깨고 그의 작품을 찾아보았다. 그의 시집을 읽는 동안, 나는 시인인 이해인 수녀가 생각났다. 그녀의 시는 난해한 기교나 묘사보다는 삶의 순수한 본질을 생각에 담아 펼쳐내어 누구나 편히 읽을 수 있다. 박진식 시인의 시에도 세상에 태어나 하루하루 희소병과 싸워야 하는 실존적 삶 그 자체가, 그의 속내 그대로 담겨있었다.
"당신은 내게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나는 빈손이어서/ 드릴 게 없습니다/ 당신은 내게 많은/ 사랑을 던져 주셨지만/ 나는 빈손이어서/ 드릴 사랑조차 없습니다/ 드릴 그 무엇도 없어/ 가만히 빈손인/ 나의 손바닥을 쳐다봅니다/ 내 생의 손금에는/ 당신의 손금이 그려져 있고/ 내 생의 손금에는/ 너무 많은 상처가 있어/ 당신 또한 눈물이 많습니다." -'빈손' 시집 <흐르는 눈물을 스스로 닦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에서.
'빈손'은 늘 곁에 두고 음미하는 시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실존 그 자체이고, 오직 '상황-속-존재'일 뿐이라고. 신이 죽어버린 시대에 삶을 정당하게 해주는 가치와 질서도 찾을 수 없으며, 어떤 가치에 대해 핑계도 변명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그의 철학적 항변을 부정할 순 없지만 '빈손'이란 시를 음미하다 보면 누군가 가만히 나의 빈손을 보듬는 손길을 느끼곤 한다. (아마 그 일지도 모른다) 나의 손금에도 분명 부정할 수 없는 타인(당신)의 손금이 새겨져 있기에…. 우리는 그렇게 공명하는 존재가 아닐까./김재석 소설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