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고흐와 배질 브라운과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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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고흐와 배질 브라운과 세월호

이해미 정치행정부 행정팀장

  • 승인 2021-04-19 08:44
  • 수정 2021-04-19 09:56
  • 이해미 기자이해미 기자
이해미
이해미 행정팀장
1888년 8월, 고흐는 동생 태오에게 편지를 쓴다.

'네 번째 해바라기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한 다발로 묶인 네 송이 해바라기를 그리는데, 예전에 그린 마르멜로 열매와 레몬이 있는 정물화처럼 노란 바탕이다. (중략) 우리는 노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림을 팔지 못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고갱을 봐도 알 수 있듯 완성한 그림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일도 불가능하니. (중략) 이런 일이 우리 다음에도 계속될까 두렵다.'

1939년 영국 서퍽 사유지에서는 발굴작업이 이뤄졌다.

자신을 고고학자가 아닌 발굴가라고 소개하는 ‘배질 브라운’은 들판과 둔덕으로 이뤄진 그곳에서 상상 그 이상의 것을 찾아낸다. 배질은 직감만으로 "바이킹 시대의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둔덕 아래에서 나온 것은 그보다 수 세기 앞선 시대였던 앵글로색슨족의 유적이었다. 배질이 발굴한 이 유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대영박물관으로 옮겨지는데, 당시 발굴가 이름에 배질 브라운은 없었다.



2021년 4월 16일 기억식은 계속되고 있다.

벌써 7주기가 됐다. 봄이라 들뜬 마음으로 출항했을 세월호. 몇 시간 뒤 반쯤 가라앉은 배를 보는 순간 우리는 모두 경악했다. 전원 구조라는 오보는 철렁 내려앉은 우리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놨다. 침몰한 배의 이름이 하필 세월호.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 이름들이 노란 개나리처럼 올해도 사람들 마음속에 피었다. 가끔은 아찔한 마음이 든다. 더 이상 노력하지 않으면 세월호도 4·19, 5·18도 잊을 것 같아서.

고흐도 배질 브라운도, 세월호도 '노력'의 가치를 말한다.

고흐는 시대가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재능을 우울감으로 점철된 더 강력한 붓터치 기법으로 세상에 남긴다. 당시에는 이름 없는 화가였을지 모르지만 21세기 고흐의 노력은 세기의 화가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배질 브라운은 정통파 고고학자는 아니었으나 직감과 실력만큼은 뛰어났다. 그는 당대 최고의 유물이라 부르는 앵글로색슨족의 무덤과 유물을 발견하지만, 박물관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현재는 대영박물관 앵글로색슨족 유물에는 발굴가 배질 브라운의 이름이 붙어 있다. 고흐도 배질 브라운도 스스로의 재능을 훗날 기억해준 세상의 도움으로 부활했다.

세월호는 앞선 예와는 노력의 본질이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의 노력이 그들의 이름을 잊지 않게 하는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면 좋겠다. 진도 팽목항에 일렁이는 노란 리본들이 고흐의 해바라기처럼, 앵글로색슨족의 보석처럼 빛나는 4월이다.
/이해미 정치행정부 행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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