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
또한,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아우르는 연구자, 문학평론가로 많은 저술을 남기셨지만, 무엇보다도 평생 수집하고 소장했던 자료 7000여 점을 대전문학관에 기증한 것은 대전문단사에 길이 남을 숭고한 업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영랑 형(永郞 兄)이라고 적은 백석 시인의 친필 사인이 있는 『사슴, 1936』은 100부 한정판으로 현재 5~6부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은 희귀본이며, 우리나라 최초 번역 시집인 김억의 『오뇌의 무도, 1923』 1920년대 상징주의 시인인 황석우의 첫 시집 『자연송, 1930』 한국 근대소설의 효시가 된 이인직의 첫 장편 소설 『혈의 누, 1955』 한국모더니즘의 대표 시인인 김광균의 『와사등, 1946』 심훈의 『상록수, 1948』 등은 가치를 한정할 수 없는 보물들입니다.
선생은 평소 '사람 냄새가 나는 끈끈한 정이 필요하고 언제든지 끈끈한 정으로 만나고 또 헤어질 때 아쉬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며 제자 문인들에게 이런 인간성을 심어주고자 노력해왔으며, 문학은 바로 이런 인간들의 이야기로 인간을 벗어난 문학은 있을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지요.
지난 여름 원로 문인 몇 분을 모시는 자리에서 선생을 마지막 뵈었습니다. 늘 소탈하시고 구수한 언변으로 대전 문단을 이야기하시던 다정한 모습이 눈에 밟혀 숙연한 마음에 오랫동안 전시실을 떠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대전문학관은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선생의 생애가 아름다운 별을 담은 서재가 되고 있었습니다.
선생을 흠모하는 라일락과 영산홍이 문학관 뜰에 곱게 핀 것을 보면서 사람도 저 꽃과 같아 아름다워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러고 보니 올해는 기상관측 이래 꽃이 피는 봄의 사춘기가 유난히도 일찍 찾아온 것 같습니다. 봄꽃들이 앞다투어 화르르 피어나더니만 눈 깜짝하는 사이 꽃 무더기로 떨어지고 그 자리에는 연두맹아(萌芽)가 초록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식물의 생식기인 꽃이 마치 사계절 성조숙증 증후군(Precocious Puberty Syndrome)에 우리가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듭니다.
하긴 어찌 올봄뿐이겠어요. 해마다 되풀이되는 자연재해와 기상이변을 두고 사람들은 날씨가 미쳤다고들 하지만 사실은 기온상승으로 인한 생태계의 정주 환경 교란은 오래전부터 진행돼왔습니다. 인간들의 풍요로운 소비를 미덕으로 우리나라는 1930년대보다 연평균 기온이 1.6℃ 상승하였으며 세계 평균 0.6℃를 2배 이상 상회해 이미 기후변화 펜데믹 중심에 있으며 '곶됴코 여름하니' 지는 꽃들이 하염없는 봄날입니다.
빌게이츠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큰 난제는 코로나19가 아니라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라고 하였지요. 백신이 개발되면 코로나19는 치료가 가능하지만, 기후변화의 재앙은 지구의 운명과 인류의 숙명을 꼼짝달싹 못 하게 한다는 사실입니다. 올해 초 핀란드의 헬싱긴 사노마트에는 '나는 커서 엄마가 되고 싶어요(WHEN I GROW UP I WANT TO BE A MOM)'라는 소녀를 배경으로 기후변화의 글꼴이 녹아내리는 북극 빙산의 획으로 디자인하여 지구 온난화를 경고하였습니다. 기후변화는 이미 미래의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기후변화가 초래할 위험에 아이를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자발적 출산을 거부하는 저출산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환경문제는 지식의 차원이 아니라 실천의 명제인 것처럼 지금 우리는 코로나 4차 유행의 기로에서 '연장, 연장, 연장'의 거리두기 반복으로 지쳐가고 있지만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들의 몫이 아닐는지요.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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