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김천 태생인 정완진 옹은 대구상업학교 재학 중인 1943년 4월 항일결사조직 태극단에 가입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을 했다. 조국 광복을 염원한 태극단은 무장항일투쟁 준비와 군사관계서적 번역·폭발물 제조 연구 등을 하던 중 동료의 밀고로 전원 체포됐다. 정완진 옹은 6개월가량 수감된 채 갖은 고문을 당했다. 함께 독립운동을 하던 동지를 잃기도 했다.
정부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정완진 옹의 공훈을 인정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과 1963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했다.
대전 유성구 계산동에 거주하던 정완진 옹은 생전 여러 차례 중도일보 인터뷰를 통해 70여 년 전 조국 해방의 기쁨을 전한 바 있다. 정완진 옹은 1945년 8월 15일을 '생애 최고의 감격'이라고 회고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3·1절도 정완진 옹에겐 특별하다. 1930년 3월 1일 기미독립선언일을 기념해 쓰인 심훈의 시(詩) '그날이 오면'을 여러 번 언급했던 정완진 옹은 그 정신을 특별히 여겼다. 각계 전언에 따르면 정완진 옹은 기력이 쇠약하던 중에도 지난 3·1절 무렵 의식과 기운이 평소보다 좋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민족 단결로 독립을 위해 투쟁하며 나아가 세계인류의 영원한 평화·자유·평등을 찾는다'는 태극단의 강령처럼 정완진 옹은 나라를 되찾은 오늘날 진정한 광복은 '평화 통일'에 있다고 강조했다.
광복 70주년이던 2015년 정완진 옹은 본보 인터뷰에서 "광복으로 긍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한국전쟁 후 남북 분단이라는 어두운 측면도 남아 있다"며 "앞으로 자주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한반도 통일을 이루는 것이 진정한 광복의 길"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완진 옹은 16일 대전현충원에 애국지사 제6묘역에 잠든다. 임효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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