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초반 매일 혹은 매주 반복되는 일상 속에 존재감이 거세되어 가는 사나이 허치를 보여줍니다. 허구한 날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메뉴로 아침을 먹고, 같은 시간 같은 곳에서 같은 자세로 운동합니다. 매주 화요일 내어놓아야 하는 쓰레기통은 번번이 수거 차량을 놓칩니다. 으레 그 자리에 그 시간이면 나타나 풍경처럼 되어 버려 있으나 없으나 한 남자.
영화는 서서히 그 남자 허치가 육체성과 함께 존재감이 드러나도록 전개됩니다. 그는 노바디(nobody)를 지나 섬바디(somebody)가 되고, 마침내 영웅(hero)이 됩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마지막 선인 가정을 침범한 악당을 쳐부수는 영웅 서사는 미국 대중 영화의 단골 코드입니다. 그럼에도 이미 인생의 전성기를 지난 듯한 초로의 사나이가 벌이는 액션은 통쾌함과 짜릿함을 넘어 애틋한 감정을 자아냅니다. 시쳇말로 라떼의 귀환이라 할 만합니다. 한 시절 미연방 수사국의 비밀 요원이었던 주인공은 녹슬지 않은 솜씨로 목숨 걸고 가족을 지켜냅니다.
액션물은 영화의 수많은 장르 중에서도 육체성이 가장 두드러집니다. 온갖 제도, 규범, 금기 등 사회문화적 제약 속에 움츠러들었던 인물이 인간 본연의 원초적 몸부림으로 존재감을 드러낼 때 관객들은 몸 속 깊은 곳으로부터 아드레날린이 솟아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실베스터 스탤론, 아놀드 슈워제네거, 브루스 윌리스, 이소룡, 성룡 등의 액션 배우들은 스크린 속을 누비며 관객들의 욕망을 대신 표현합니다. 이런 점에서 액션 영화는 가장 남성적인 장르라 할 만합니다.
영화는 평범하게 조용히 지내려고 말도 줄이고, 목소리도 낮추고, 참는 게 길이려니 하며 살아가는 많은 중년 남성들에게도 세상을 주름잡던 시절이 있었음을 생각하게 합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존재감 없이 살던 사나이를 영웅으로 소환하는 이 영화는 그래서 조금 특별합니다. 유약한 신문기자가 망토를 두르고 하늘을 나는 '슈퍼맨'이나, 나이를 먹었지만 계속 현직 경찰로 명성을 날리는 '다이하드'의 존 맥클레인 형사와 다릅니다. 육체성의 쾌감과 더불어 중년 남성의 사회적 존재 의미를 함께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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