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취재 기록-10] 초기 판소리 사설은 ‘충청도 스타일(?)’… 3단계 거쳐 변천(變遷)

[10년간의 취재 기록-10] 초기 판소리 사설은 ‘충청도 스타일(?)’… 3단계 거쳐 변천(變遷)

“~했소, ~했는디, 오매 그랬당가”…왜, 판소리 사설은 ‘전라도 사투리’로 돼 있을까
시대 상황에 맞게 유행…지금의 사설은 전라도 방언으로 고착화

  • 승인 2021-04-14 10:20
  • 수정 2021-09-13 13:25
  • 손도언 기자손도언 기자
국악음반박물관소장_박동진김득수판소리1970공연사진
'마지막 충청도 어감으로 판소리를 구사한 박동진 명창'...충청남도 공주 출신으로 중고제 명창 김창진 문하에서 심청가 등을 사사한 판소리 인간문화재 박동진 명창의 1970년대 공연 모습(고수 김득수).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아이고 인자 죽을란가. 헛소리를 허네 그려. 밖에 누가 왔소. 아이고 어머니 이 밤에 어찌 또 오셨소. 내가 너더러 헐 말이 있어 왔다." 판소리 춘향가 사설 중에서 춘향 모친인 월매가 '옥으로 춘향이 찾아가는 대목'의 일부 아니리 부분이다.

이 사설의 가장 큰 특징은 '허네 그려, 왔소, 헐 말' 등처럼 전형적인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한 점이다. 현재 판소리 사설은 이 대목뿐만 아니라 현재 구전돼 온 심청가, 수궁가 등 판소리 5바탕 사설 전체가 거의 전라도 사투리로 돼 있다.

판소리 초기 명창들은 대부분 '충청도 소리꾼'이었다는 주장이 학계 등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본보 3월 24일 보도= [10년간의 취재 기록-3]…'판소리 심청가 음악문화'…충청도 명창이 주도(主導)했다> 그렇다면, 현재 판소리 사설이 전라도 사투리로 전승돼 온 까닭은 무엇일까. 또 판소리 사설의 흐름은 어떻게 전개돼 왔을까.

노재명 국악학자에 따르면 판소리 가사 어투는 크게 3단계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초기의 경기, 충청권 명창은 그 지역의 어감을 가미해 소리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처음 판소리를 불렀던 것으로 알려진 충청도 명창, 하은담과 최선달 명창이 그 예다. <본보 4월 13일자= [10년간의 취재 기록-9]'신재효 일까, 송흥록 일까'…우리나라 첫 판소리 명창은 누구일까?>



하은담과 최선달 명창 이후, 전라도 명창들이 대거 출현한다. 이들의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전라도 사투리가 포함된 소리가 성행한다. 또 판소리가 큰 인기를 얻으면서 왕의 관심과 벼슬을 받게 된 '어전광대'가 등장했고, 이들은 소리판의 새로운 장르를 형성해 갔다.

어전광대는 왕으로부터 벼슬을 받고 왕실에서 소리한 명창을 말한다. 어전광대는 지금으로 말하면 대중가요의 '톱스타' 급이다. 어전광대는 궁궐 품격에 맞는 서울 표준 어투로 소리를 했다.

어전광대의 등장은 충청식의 판소리 사설을 한양, 즉 지금의 서울 스타일로 변모시킨다. 아무래도 어전에서 소리를 하다보면 지역적 특색인 방언을 배제했을 것이다. 따라서 판소리 사설도 표준어로 구사해야 했고, 명창들의 의복이나 행동거지(行動擧止) 등도 왕이나 엄격한 궁중 예절을 따라야했을 것이다.

어전광대 시절, 궁궐의 부름을 받지 못한 그 밖의 수많은 각 지역의 명창들은 각자의 고향인 충청도, 전라도 등의 사투리가 반영된 소리를 제각각 구사했다.

국악음반박물관소장_심화영사진
충청남도 서산 국악 명가문의 판소리·가야금병창·전통춤 명인 심화영 선생. 1995년 심화영 선생 자택에서 노재명 판소리학자가 촬영했다. 심화영 선생은 전통적인 충청도 어감의 판소리를 구사한 마지막 세대 명창이다.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그리고 왕조시대(王朝時代)가 끝이 난 뒤, 어전광대는 사라진다. 이후 충청도 중고제가 점차 소멸되고 전라도 동서편제가 압도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전라도 명창들이 지속적으로 대거 출현했고, 전국 판소리 무대를 거의 독차지했다.

이처럼 전라도 동·서편제 소리가 대세가 된 후 '전라도 방언'이 포함된 판소리 사설, 호남 억양 발음이 판소리의 주류를 형성했다. 이런 흐름은 현재까지 강하게 전해져 오고 있다.

반면 20세기 한때는 경상도 지역에서 명창들이 상당수 나오면서 경상도 사투리를 기반으로 판소리 아니리를 한 사례도 있었다.

한편, 현대 판소리계의 대명사로 불리는 충남 공주 출신의 박동진 명창을 비롯해서 충남 서산 출신 심화영 명창, 충남 홍성 출신 김차돈 명창이 전통적인 충청도 어감의 판소리를 구사한 마지막 세대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