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다. 아이들을 잘 둔 덕분에 요즘 나의 삶은 반란스럽다. 반란은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먼저 반란(反亂)은 정부나 지도자 따위에 반대하여 내란을 일으킴이다.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을 뜻하는 쿠데타와 동격이다.
다음으론 반란(斑爛)인데 무지개처럼 여러 빛깔이 섞여서 아름답게 빛남을 뜻한다. 나의 요즘이 '반란스럽다'는 것은 당연히 후자에 속한다.
'초경서반'은 '초졸 경비원 아버지와 서울대 출신 자녀의 반란'을 넉 자로 함축한 것이다. 얼마 전 후배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거기서 나온 화두 역시 내 아이들을 부러워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초졸 출신인데도 어쩜 그렇게 글을 잘 쓰세요?"라며 부럽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저도 대학물은 좀 먹었습니다."
지천명 나이 때 3년 과정의 사이버 대학인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 노동대학'(전태일 대학)에 입학했다. 주경야독으로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졸업식 때는 학업 우수상까지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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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서로 협력해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이담에 소위 명문대를 가는 것 또한 부모가 아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줄탁동기'의 모범을 보여줘야 함은 당연하다.
항상 책을 읽는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 아이는 이를 본받아 독서를 사랑하기 마련이다. 전태일 대학을 졸업한 날은 2010년 12월 29일이다. 서울 여성프라자 아트컬리지에서 치렀는데 아이들이 더 반가워했다.
비정규직의 박봉으로 허덕이면서도 3년 과정을 완주한 "아버지가 정말 대단하세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전태일 대학에서 공부할 당시, 월 1회는 오프라인 수업이 있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석학 교수님의 강의를 직접 들을 수 있어 정말 좋았다. 수업 뒤엔 1만 원씩 추렴하여 인근의 술집으로 이동했다. 거기에선 당면한 현안에 대하여 백가쟁명(百家爭鳴)의 토의가 더 이뤄졌다.
전태일(全泰壹)은 한국의 노동운동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봉제 노동자로 일하면서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력하다가 1970년 11월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하였다.
전태일은 나처럼 지독한 가난 때문에 거의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남대문 초등학교 4학년에 다니던 1960년에 학생복을 제조하여 납품하던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고 큰 빚을 지는 바람에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부터 나와 흡사한 삶의 궤적을 그린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동대문 시장에서 물건을 떼어다 파는 행상을 시작했다. 나 또한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소년가장이라는 완장이 강제로 채워져 역전에서 신문팔이와 구두닦이를 했기 때문이다.
뇟보(사람됨이 천하고 더러운 사람)와 만무방(염치가 없이 막된 사람)들이 득실거리는 역전은 남을 속이거나 손해를 끼치려는 자들이 수두룩했다. 그렇지만 나는 그들을 내 삶의 거울과 반면교사의 교훈으로 삼았다.
입때껏 이 풍진 세상을 살아오면서 경찰서 한 번을 안 간 것은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 보답일 것이다. 오늘날 나에게도 반란(斑爛)의 화사함과 향기라는 행복이 선물처럼 온 것은.
홍경석 / 작가·'초경서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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