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일전에서 패배하면 감독 경질에 대한 여론에 힘이 실렸던 과거의 패턴을 이번에도 반복하고 있다. 한일전에 대한 의미를 벤투 감독에게 좀 더 강하게 어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부질없는 행동이기도 하다. 이역만리 외국에서 태어나 이제 겨우 2년 7개월 남짓 타국 생활을 하는 지도자에게 한일전의 의미를 각인시킨다는 것 자체가 무리한 요구였다.
2018년 8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벤투 감독은 16승 8무 4패를 거뒀다. 승패만 계산한다면 나쁘지 않은 성적표다. 문제는 과연 벤투 감독이 자신이 추구했던 철학을 대표팀에 얼마나 입혔는지다. 벤투의 축구는 소위 빌드업 축구였다. 볼 점유율을 최대한 가져가고 중원에서부터 창의적인 움직임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전술이었다. 부임 초기에는 빌드업이 어느 정도 구현되나 싶었지만, 정예 멤버들이 출전했던 2019아시안컵과 카타르 월드컵 예선에서는 그의 지도력을 의심케 하는 경기들이 많았다.
빌드업 축구는 단기간에 완성될 수 없는 전술이라는 것이 축구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과거 한국 축구의 장점이었던 체력과 스피드를 활용한 역동적인 움직임이 한국 축구의 전형적인 팀 색깔이었지만 최근 대표팀의 경기에선 이런 모습을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고급 승용차로 회장님을 모셨던 운전사가 군용 트럭을 승용차처럼 운전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 축구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며 자신의 색깔을 입혔던 히딩크 감독의 사례를 비교해 본다면 벤투 감독의 빌드업은 더욱 설득력이 떨어진다.
벤투의 축구 철학이 나쁘다고 말할 순 없다. 빌드업을 대표팀에 실현하고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벤투 감독의 이런 실험적인 시도가 곧 다가오는 월드컵 예선까지 이어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표팀을 지원하는 시스템에 대한 파격적인 변화, 그도 안 된다면 감독 교체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영표 강원FC 대표이사가 축구 해설위원이었던 2014년, 브라질 월드컵 16강에서 탈락한 대표팀에 이런 일침을 가했다.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고 보여주는 자리다. 월드컵에 경험하러 나오는 팀은 없다." 축구 대표팀 관계자들이 다시 한번 새겨들었으면 하는 직언이다.
금상진 기자 jo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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