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등산길 위의 보약 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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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등산길 위의 보약 세 제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21-04-0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등산대장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오랫동안 못 만나 얼굴 기억도 안 된다는 푸념 섞인 말투로 산에 오는 친구들과 지인들이 보고 싶어 하니 빨리 나오라는 얘기였다.

1년 정도 목요 산행으로 만난 친구들과 지인들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동안 산행을 못한 이유는 재능기부 차원의 봉사활동을 좀 하는 게 있어서였다.

수·금요일은 YWCA에서 할머니들 문해교육, 월은 유성평생학습관 중··고 검정고시 지도, 월별 3회 안팎의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조정활동, 화·일요일은 전일제 효진흥원 효문화 지도사 활동, 주중 빈 시간과 목요일은 초·중등학교 인성강의 출강이 주 요인인 셈이다.



이 정도면 산행 빠진다고 친구한테 갈구임당하지는 말아야 할 텐데…….

산에 가니 친구들도, 성이 다른 오누이 같은 여인들도, 후배의 낯익은 얼굴들도 모두 반겨 맞아 주었다.

얘길 들어보니 얼굴 보고 싶어 나왔다는 친구와 지인들도 있어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의 거기엔 마음을 담아 걱정해 주는 따뜻한 친구의 가슴이 있어서 좋았다.

또한 지인의 다사로운 인정이 있어서 좋았다. 가슴 마다엔 차 한 잔이라도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정감 있는 사람들이어서 좋았다. 이 모두가 따뜻한 가슴과 오붓한 정으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더욱 좋았다.

한편 그 자리엔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세속에 물들지 않는 바위의 꿋꿋함과 의지가 있어서 금상첨화(錦上添花)였다.

또 거기에는 돈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청정한 공기가 있어서 좋았다.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주인 없는 산소가 있어서 좋았다.

늘 보는 산이지만 소나무 떡갈나무 참나무 고로쇠나무 사이로 터져 나올 듯한 진달래꽃망울에 눈길이 자주 갔다. 연초록빛 열병식 대열로 들어차 있는 수목 사이엔 봄의 전령사 뻐꾸기의 울음이 싫지 않아서인지 발걸음이 무겁질 않았다. 간간이 보이는 다람쥐의 경쾌한 달음질에 시선이 끌렸다. 이따금씩 산의 전속악사 꾀꼬리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딱따구리의 나무통 찍는 소리의 타악기 장단에 맞추어 자연스런 화음이 되어가고 있었다.

한 움큼씩 묻어 나올듯한 대자연의 싱그럽고 물씬한 봄 내음에 코를 씰룩거리며 가방마다 들어 있는 먹거리들을 풀러 놓았다. 온갖 나무와 화초 풀들로 에워싸인 수목의 궁전에 시내 각 동에서 모여든 생면부지의 진수와 성찬이 오붓한 데이틀 하는 자리였다. 시내 유명음식점의 진수성찬에서도 맛 볼 수 없는, 색다른 이집 저집의 별미들이 저마다의 입맛을 돋우고 있었다. 거기다 양념삼아 던지는 이 친구 저 지인의 감칠 맛 나는 재담 한 마디에 얼굴마다 피어나는 또 다른 봄의 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맛에 산을 좋아하는 친구와 지인들이 즐겨 만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한 폭의 그림 같은 정경은 신선이 외출 나와 기분 전환으로 즐기는 세상 같았다. 연초록의 부담스럽지 않은 평화경 속의 어우러진 색깔은 스펙트럼의 조화가 따로 없는 그 자체였다. 세상의 그림 잘 그리는 실력 있는 화백도 흉내 낼 수 없는 배색과 황금분할 구도로 이루어진 평화경은 신선만이 즐기라고 펼쳐 놓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동네마다 훤하게 피어 있는 복숭아꽃 살구꽃을 바라보는 순간 찡하는 고향의 모습에 가슴은 얼룩져 가고 있었다.

복숭아꽃 살구꽃 어우러진 풀밭에 누워 눈을 지그시 감고 한가로이 되새김질하는 고향 어미 소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나타났다. 순간 즐겨 불렀던 이원수 작사 홍난파 작곡인 '고향의 봄'이 나를 그냥 내버려둘 리 없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꽃동네 새 동네 나의 옛 고향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이 불면

냇가에 수양버들 춤추는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 고향의 봄 -



한 곡조 뽑은 후에 심호흡을 크게 했다. 세상에서 제일 맑고 신선한 공기를 모두 모아놓은 느낌이었다.

수림에서 발산하는 신선하고 상쾌한 청정의 공기는 심신을 맑게 해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오장육부까지 튼튼하게 해주는 영약의 보약이 되고 있었다..

나는 모처럼만에 신선의 궁전 같은 곳에 와서 세상에서 제일가는 청정 공기를 보약으로 들었다.

그것도 마음껏 들었다. 보약을 들었지만 거기엔 어떤 대가의 지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공짜로 즐기는 보약이라서 마냥 즐겁기만 했다.

전후좌우에는 언제나 용광로 열기를 뿜어내는 친구의 따뜻한 가슴이 있어서 좋았다. 오랜만에 나는 산에 와서 따뜻한 가슴으로 친구가 전하는 우정의 보약을 또 한 제 들었다.

여기에 오누이처럼 다소곳한 지인의 정으로 주는 인정의 보약을 빼놓을 수 있으랴 !

언제 만나도 동기간의 핏줄 같은, 성이 다른 오누이들의 다소곳한 인정이 또 한 제 보약으로 자리매김을 하는 것이었다.

몸에 좋은 보약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기분을 좋게 하고, 엔도르핀이 돌게 하고, 온몸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면 그게 보약이지 또 다른 특별한 그 무엇이 있겠는가!

내가 좋아하는 산으로부터, 아니, 내 마음을 뺏어간 송림으로부터 진시황도 들지 못했던, 청정과 무구로 포장한 천상천하 제일의 맑은 공기 영약을 받아 마셨다.

친구가 주는 우정의 보약도, 오누이 같은 다사로운 이가 주는 인정의 보약도, 자연이 주는 청정 산소의, 영생 보약도 모두 용광로의 감초가 되게 하여 더욱 뜨거운 가슴으로 세상을 덥히오리다.

등산길 위의 보약 세 제 !

보약 값은 일수 이자까지 쳐서 평생 사람냄새 물씬한 온혈 가슴으로 두고두고 갚으오리다.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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