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 슬기유치원 교사 |
종종 이런 반응도 목격한다. "역시 신규가 도전 정신이 있어." 때로는 이런 반응도 있다. "경력 교사는 역시 따라갈 수가 없어."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는 결국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우리는 모두 똑같은 한 명의 교사일 뿐이다. 이렇게 말을 꺼낸 이유는 교육현장에서 교사로서 '모두'의 망가짐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서이다.
유아중심·놀이중심 교육과정의 실천을 위해서 교사는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많은 선생님들이 유아중심·놀이중심 교육의 실천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남자니까, 신규니까 혹은 경력이 많으니까'라고 치부되거나 혹은 이를 회피의 위안으로 삼는 것에 큰 경각심을 느낀다.
근래에 "들뢰즈와 내부작용 유아교육"이라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유아중심·놀이중심 교육의 실천에 있어 굉장히 큰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유아와 교사가 감응하고 내부적으로 작용하는 유아교육에서 어떤 종류의 학습이 성취될 것인지는 절대 명확하게 계획될 수 없다", 배움이란 우리가 교육 실제를 살아가고 행동하는 데서 사물들의 바로 중간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우리)는 어떨까? 유아중심·놀이중심을 외치면서 여전히 발달심리와 왜곡된 구성주의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여전히 교사로서 무엇인가 가르쳐야 함에 얽매여있지는 않을까? 여전히 표준발달단계에 근거하여 유아의 현재 수준을 파악하고, 이를 근거로 '성숙하다'와 '미성숙하다'를 평가하고, 더 높은 교육적 목표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을까? 확산적 사고를 위한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유아의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은 교사가 목표로 하는 것에 도달하여야 함을 맥락적으로 유아가 느끼도록 하고 있지는 않을까?
유아중심·놀이중심 교육과정을 실천하면서 가르침이 없어도 배움이 일어난다는 말을 조금씩 깨달아간다. 유아가 경험하는 시간과 공간, 사람과 사물에서 배움이 일어난다. 유아가 존재하는 모든 곳과 모든 것에서 무엇인가가 일어난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의미있게 바라보고, 유아에게 의미있게 전해질 때 비로소 가르침이 없어도 배움이 일어남을 깨닫는다.
바닥에 넘어져 무릎을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무릎에 500원 동전만한 큰 딱지가 앉았는데, 떼면 균이 들어간다고 해서 한참을 두었었다. 한참이 지나 딱딱하기가 그지없고, 딱지 존재 자체를 잊었을 무렵 다시 한번 넘어지면서 딱지가 벗겨졌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는 뽀송하고 매끈하게 자란 새살이 있었다.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 오래 묵혀둔 딱지로 인해 오히려 새살이 자라고 있음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딱지를 걷어내어 새살을 볼 수 있었듯, '교사는 가르쳐야 한다'는 단단하게 굳은 딱지를 떼어낼 때 비로소 '교사로서' 배움이 일어나는 과정을 순수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이원호 슬기유치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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