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호석은 중국 쑤저우 타이후(太湖) 주변에서 나는 돌이라 한다. 경관석을 이르는 보통명사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복잡하고 기괴한 모양이다. 돌뿐 아니라 쑤저우는 경관이 매력적이다. 환경덕분에 문화가 고도로 발달하였으며, 예술이 집대성된 많은 원림(園林)으로도 유명하다.
울안에 두고 즐기는 것으로 부족했을까? 실내에서 자연을 완상하려는 시도도 있다. 바로 수석이다. 자연석에 자연의 오묘한 아름다움이 흥미진진하게 담겨있다. 수석 그 자체가 땅의 기록이자, 화석, 석각, 고분벽화, 거석문화 등 자연사의 징표이다. 한때는 유행하여 너나없이 괴석을 찾아 나섰던 기억이 있다. 자신이 소장한 수석을 침튀겨가며 자랑하고 설명한다. 사람마다 선호도가 다르다. 공통적으로 석질이 좋아야하고 개성이 있어야 하며 멋있어야 한다. 산수가 축소된 산수경석, 어떤 형체를 닮은 물형석, 표면에 문양이 있는 무늬석, 다양한 색상이 함께 있는 색채석, 심상을 자극하는 추상석, 전해오는 역사가 담긴 전래석 등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옛 그림 감상하다보면 고목죽석류를 많이 접하게 된다. 석 중에는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이고, 침식되고 패여 구멍이 송송 뚫린 기암괴석이 자주 등장한다. 본 일이 없는 필부로서는 그림 구성상 또는 운치를 더하기 위하여 배치한 것 아닐까, 심산계곡 축소 모습 아닐까, 상상 속에 존재하는 이상향은 아닐까 생각했다. 창덕궁이나 중국 이화원, 소주 등 여행지에서 태호석을 만나고 나서야, 방안에 누워 자연을 즐기기(臥遊)위해 산수화를 걸어두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임을 알았다.
중국 송대에는 고목과 함께 그려지다 원대에 단독으로 묘사되기 시작, 명대 말에는 문인화의 독립된 소재로 각광받았다. 조선 후기로 오면서 우리 화가들도 많이 다루었다. 20세기 초까지 활약한 정학교(丁學敎, 1832 ~ 1914)는 정괴석이라 불릴 정도로 심하게 뒤틀린 추상 형태의 괴석을 잘 그렸다.
배배꼬인 괴석과 어울리는 식물이 파초(芭蕉)인 모양이다. 품격 있어 보였을까? 시원스레 쭉쭉 뻗은 모습이 뒤틀린 괴석과 조화롭다 여겼을까? 자주 동반 등장한다. 파초는 원산지가 중국으로 보통 2 ~ 3m 자라지만, 5m까지도 자란다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노지 월동이 어려워 남부 이남지역이 아니면 재배가 어렵다. 그러함에도 한양에서 활동한 화가 작품에 곧잘 등장하는 것을 보면, 완상하기 위해 엄청 공들여 가꾼 듯싶다.
그림은 조선 후기 삼재 중 한 명인 심사정(玄齊 沈師正, 1707~1769)의 '파초와 잠자리'이다. 심사정은 용묵과 용필 모두에 능하고 다양한 기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그의 장점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파초와 잠자리, 심사정, 지본담채, 32.5 x 42.5cm, 개인 소장 |
그림 오른쪽에 간지(干支) 없이 ''파초 시끄러운 소리 그치지 않는데, 한데서 추위에 떠는 참새 무료히 앉아 있네(芭蕉喧未已 寒雀坐無聊 玄齋)'라고 썼다. 윤철규 저 '시를 담은 그림, 그림이 된 시'에 의하면 원시 '오우(午雨)' 첫 번째 글자 파(破)가 바뀌어 의미가 어색하다고 한다. 파초가 저절로 시끄러운 것이 아니고, 빗방울이 파초 잎 두드리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것이다. 시 오우는 이병연(李秉淵, 1671 ~ 1751, 시인) 작으로 "파초 잎 두드리는 소리 그치지 않는데 / 참새는 떨면서 무료히 지켜보네 / 한 줄기 우수수 내리는 비 / 쓸쓸히 서쪽 창을 지나는 것을(破蕉喧未已 / 寒雀坐無聊 / 一陣蕭蕭雨 / 西窓度寂廖)"이다. 한여름 소낙비가 지나가는 풍경이 절로 그려진다. 젖은 털 고르는 참새는 파초 잎에 묻혀 있으리라. 그를 즐기는 사람은 어떠한가?
조선시대 시의도에서 그림이 된 시는 주로 중국 시이다. 드물게 조선 시인의 시를 화제로 삼았다. 그도 의미가 있어 소개한다.
저마다 즐기는 일이 있을 터, 다른 사람은 무엇을 즐기며 살까? 때로 궁금하여, 몇 가지 들춰 보았다. 지금은 데려와 함께 살 필요가 없다. 더구나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즐겨야 선 아닌가? 자연 그대로 두고 즐거움을 찾으면 될 일이다. 잠시 훌훌 털고 길을 나서면 된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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