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
그렇게 된 데에는 테슬라의 경영자 일론 머스크의 공이 크다. 그는 2008년 첫 번째 제품인 로드스터에서부터 시작해 꾸준히 전기차 모델을 내놓으면서 전기차 대중화를 주도하는 한편, 스페이스엑스를 설립해 성공적으로 민간 우주개발 시대를 열어젖혔으며 이 밖에도 여러 굵직굵직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말 그대로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일 중독자로 유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여러 개의 회사를 동시에 이끌어나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한창 일할 때는 주당 100시간을 일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간을 많이 쓴다고 해서 누구나 세상을 바꾸는 결과를 내지는 못할 것이다.
일론 머스크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성공한 비결을 열심히 일하는 것 외에도 '제일원리' 사고법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제일원리는 어떤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이 인터뷰 이후 머스크의 혁신 방식은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갖고 가장 근본적인 것부터 재조립해나가는 것이라고 소개되고 있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이 설명은 머스크가 한 이야기의 '맛'을 제대로 전해주고 있지는 못하다.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론 머스크가 경제학과 함께 물리학을 복수전공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제일원리는 가장 근본적인 것을 뜻하는 철학 용어이기도 하지만, 물리학에서는 물질의 특성을 원자 수준에서 양자역학을 사용해 계산할 때 사용하는 용어다. 실제로 머스크는 인터뷰에서 '물리학적인 접근법'을 상당히 강조했다. 머스크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경영하는 방법에 대한 원론적인 이야기를 넘어 당시 그에게 주어진 문제를 원자 수준까지도 들여다본다는 뜻이기도 했다.
전기자동차가 화려한 컴백을 하게 된 배경이 된 리튬이온 배터리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정해진 공간에 더 많은 전기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는 리튬이온 배터리를 본격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스마트폰을 포함한 모바일 기기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러나 리튬이온 배터리는 너무 비싸서 자동차에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일론 머스크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배터리 소재를 원자 단위로 구분해 비용을 생각해보니 더 싸게 배터리를 만드는 방법을 찾으면 전기차가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배터리를 대량생산하는 공장을 건설해 수직계열화에 나선 배경이 여기에 있다. 그리고 무대 뒤편에선 원자 수준에서부터 소재를 개량하는 노력을 끊임없이 펼쳤다. 이는 캐나다 달후지대의 제프 단 교수가 테슬라를 위해 호주의 중성자 연구시설을 방문하면서까지 소재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통해 단편적으로 알려졌다.
전기차가 대세가 되다 보니 폭스바겐과 같은 유수의 자동차 회사들이 배터리 내재화에 나서고 있지만, 모든 자동차 회사가 그렇게 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남들과 똑같은 배터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싸게 더 성능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소재에 대한 연구개발의 전통과 연구 인프라를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며 여전히 무수한 위험 요인을 안고 있다. 그러나 인류가 안고 있는 커다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을 한다는 그의 목적은 이미 반 이상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테슬라가 없더라도 전기차의 진격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혁신을 꿈꾸는 기업이라면 문제의 본질을 원자 수준까지 들여다보는 그의 제일원리 사고법을 따라 하게 될 것이다. 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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