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용 원장. |
며칠 전 방송에서 지나가는 예고편으로 "나빌레라"를 보곤, 삼십 년도 더 전 고등학교 때의 기억이 나서 원작의 웹툰을 찾아봤다.
40년 동안 착실히 우편 공무원 생활을 퇴직한 70살 할아버지. 평범한 가장으로 살다가 늘그막에 발레라는 인생 마지막 꿈을 꾸는데 알고 보니 치매를 앓고 있었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어려워진 집안 형편 속에서 엄마가 했던 발레를 적당히 하는 은근 재능있는 전직 축구선수 출신 23살의 발레리노. 발레라기에 남녀 무용수의 사랑 이야기일 거 같았는데 어울릴 거 같지 않은 두 남자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할아버지는 20대 청년에게 발레를 배우고, 이 젊은 발레리노는 할아버지에게 인생을 느낀다. 웹툰 전체가 오륙 십편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내가 나이를 먹어선가 신기한 게 매 편을 볼 때마다 눈물이 고이며 본 것 같다.
부인이나 자식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적 추억의 꿈인 발레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할아버지의 용기와 치매를 조금이라도 극복하려고 매일 매일 수첩에 기억을 남기는 노력이 눈물겨웠고, 어려워진 집안 형편에 하루하루 근근이 현실을 살아가며 불안한 미래에 방황도 하지만 결국 자기의 꿈을 찾아서 노력하는 젊음의 통관 의례 과정을 보여주는 이 젊은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었다.
이 감정을 항상 따뜻이 감싸는 이 작품에서도 갈등과 긴장을 주는 부분이 있는데 갈등 요소는 할아버지의 사십 대 후반 장남이다. 내 나이 대의 계층이라 많은 공감이 되는데 안정된 직장과 가정에서 편안한 사회생활을 하는 아들 입장에서 동네 창피하게 70의 아버지가 쫄쫄이바지 입고 뜬금없이 발레를 시작 하겠다면 나라도 무조건 찬성은 못할 거 같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 격한 발레를 하다 다칠 수도 있는 아버지에 대한 걱정.
또 긴장을 고조시키는 부분은 치매 환자를 가끔은 치료해야 하는 나에게만 느껴지는 감정일지도 모르겠지만 치매를 바라보는 젊은이의 생각이었다. 정을 나눈 할아버지에게 자기가 잊혀 질지도 모른다는 슬픔에 차라리 정을 끊을 것을 선택하는 장면은 전에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이다. 환자로는 치매를 보았지만, 삶 속에서 치매를 보지 못해서였을까?
일상에서 내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없어진다는 걸 생각해 본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대부분 한의원 오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최고 걱정인 질병은 치매랑 중풍이라고 한다.
중풍은 그 후유증으로 몸이 마비돼서 마음대로 못 움직여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된다는 점을, 치매는 기억이 없어져서 치매 당사자가 일상적인 생활을 혼자 하지 못한다 라는 것만 생각하고 살았는데, 친한 사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내가 없어진다 라고 생각해 보면 이런 생각만으로도 나름 무섭고 슬퍼지는 것 같다.
현재 한국은 급속히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문화의 소비층이 고령화되고 있고 할아버지가 주인공인 만화도 그려지는 것 같다./박승용 용한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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