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빅 이슈' (서울사회경제연구소 & 생각의 힘 발간)에 나오는 문장이다. 맞는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대학을 안 나오면 사람 취급도 받기 힘들다. 이는 굳이 멀리서 찾아볼 것도 없다.
내가 바로 산증인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런데 막상 대학에 들어갔다고 치자. 공부는 어느 정도 할까. 현재 한국의 대학은 학습경쟁이 대학 입학 단계에서 멈춘다.
중고교 시절 그렇게 힘들게 공부를 해서 대학에 입학하지만, 막상 대학에 들어가면 대부분의 학생은 학업에 집중하지 않는다. 2014년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하루 평균 학습시간이 초등학생은 5시간 20분으로 나타났다.
중학생은 6시간 41분, 고등학생은 7시간 34분인데 대학생 이상 학생계층은 3시간 54분에 불과했다. 초등학생보다 적은 학습시간, 한국 대학생의 모습이다. 이 또한 [한국경제 빅 이슈]에 등장하는 팩트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는 조선 후기의 서화가이자 문신이다. 그의 그림과 글씨는 국보급 문화재와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김정희는 "가슴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고 했다.
이와 비슷한 주장은 중국 명말 청초의 사상가였던 고염무(顧炎武)도 했다. '독서만권(讀書萬卷) 행만리로(行萬里路)'라고. 이는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다녀라"라는 얘기다.
맞는 말이다. 최근 저서를 다시 내면서 유튜브를 찍었다. 진행자가 물었다. "그동안 읽은 책이 만 권도 넘는다면서요?" "맞습니다!" 주저 없이 답변했다. 나는 시간만 나면 책을 본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나처럼 독서삼매경에 빠질까? 통계청의 '2019 생활시간조사' 결과에 의하면 한국인이 평일 책 읽기에 투자하는 시간은 하루 24시간 중 고작 10분이라고 했다.
이처럼 책을 안 보는 이유는 뭘까? 유튜브,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부터 페이스북, 블로그, 밴드,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SNS까지 재밌는 게 차고 넘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위에서 열거한 것처럼 자신은 몰라도 자녀만큼은 대학을, 그것도 소위 명문대에 보내고자 한다면 부모가 먼저 책을 봐야 한다. 지금과 달리 과거엔 책의 가격이 엄청났다.
고대와 중세 유럽에서 문자를 기록하는 데 사용한 양피지(羊皮紙)는 내구성이 뛰어났다. 그렇지만 가격이 매우 비쌌다. '성서' 한 권을 만들려면 양 200마리 이상의 가죽이 필요했다고 한다.
15세기 독일에서는 양 200마리에 곡물 수십 가마를 더해야만 비로소 설교집 한 권과 바꿀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조선시대 '중종실록'에 실린 기록에 따르면 당시의 문신 어득강(魚得江)이 한 말이 나온다. "가난한 이는 책값이 없어 책을 사지 못하고, 값을 마련할 수 있다 해도 '대학'이나 '중용' 같은 책은 상면포(常綿布) 3~4필은 주어야 합니다."
상면포는 품질이 아주 좋은 옷감을 말한다. 이 옷감이 3∼4필이라고 한다면 당시 2∼3마지기 논의 1년 소출과 맞먹었다. 따라서 지금의 시세로 치자면 엄청난 고가였다.
한데 지금은 지하철이든 시내버스든 그 안에서 책을 보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진부한 주장이겠지만 책은 여전히 우리네 인생길을 더욱 밝고 평탄한 길로 인도하는 어떤 등대다.
나는 지금도 툭하면 책을 읽는다. 만 권의 독서는 그래서 가능했다.
홍경석 / 작가·'초경서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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