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국경을 뛰어넘어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이 있다. 그것들은 불평등한 구조에서 나온다. 젠더, 인종, 계급, 성적 지향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인식하고 나면 사람은 두 분류로 나뉜다. 자신이 우위라고 믿는 사람과 열위 즉, 약자이며 소수인 사람들. 우리는 같지 않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차별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지난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총격 사건으로 미국 사회와 정치권에 큰 파문이 일었다. 해당 총격 사건은 아시아계 증오 범죄로 한인 여성 4명을 포함해 8명이 희생됐다. 이에 워싱턴DC, 뉴욕시, 애리조나주 피닉스 등 추모객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집회를 열고 밤늦게까지 시위하며, 아시아계 인권 운동으로 번졌다. 이런 와중에도, 아시아계 증오 범죄는 또 일어났다. 시위대가 행진하며 도로 교차로를 건너려 하자 한 남성이 차를 몰고 두 차례 돌진했고, 인종차별 발언을 일삼았다. 이 외에도 증오 범죄 규탄하는 팻말을 들고 집회에 가고 있던 여성의 팻말을 빼앗고, 얼굴을 때리는 사건도 있었다.
혐오는 인종을 넘어 여성, 종교, 성 소수자 등 사회 전반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증오와 폭력은 역사 내내 우리와 함께했다. 각종 차별과 폭력이 만연한 세상에 살고 있으므로 이런 일을 겪는 걸까. 그렇다면 어쩌면 나 또한 그럼 차별과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일지 모른다. 우리나라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정의'와 '평등'을 요구한다. 이는 아직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인종차별이 만연하다는 것이다. 고용허가제에서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없어 이주민들이 강제노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산업재해 위험에 놓여 있는 공장에서 안전 장비가 없어도 아무 말 하지 못하고,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다. 최근에는 이주노동자에게만 코로나 19 진단검사를 강요한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명령이 차별이라는 인권위의 판단이 나오기도 했다.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아시아계 인종차별에만 분노하지 말고, 국내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예민해져야 한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하며 그 본질을 피해 갈 것이 아니라 피해자를 위해 힘써야 한다. 우리는 과연 어떤 시각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바라보는가? 그들의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나 그들을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홍성수 교수는 '타인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말'이 혐오 표현의 본질이라고 했다. 과연 나는 타인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고, 새롭게 비판적인 시각을 길러야 한다. 그게 현실을 재정비하고 불균형을 깨는 일이다. 우리는 같지 않다는 이유로 더는 차별을 침묵해선 안 된다. /한남대학교 정치언론학과 유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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