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모로 알려진 20대 A씨는 '전 남편과 닮은 아이라 키우기 싫었다'며 빈집에 아이만 혼자 남겨둔 채 이사를 나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래층에 사는 A씨의 모친이 딸의 집을 찾았고 미이라 상태가 된 손녀의 시신을 발견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친엄마의 방임 속에 죽어간 한 아이의 애달픈 사연이겠거니 했다. 울며불며 엄마를 기다리며 서서히 죽어갔을 아이를 생각하면, 아이를 버려둔 채 본인의 짐만 챙겨 이사를 나간 친모의 비정함은 한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의심해 볼만 하다.
그런데 여기서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서스펜스 대반전 스토리가 이어진다. 경찰의 유전자 검사 결과 아이의 친모는 A씨가 아닌 외조모 B씨였다. A씨는 아이를 친딸로 알고 키웠고, 외조모 B씨는 3년 전 함께 임신한 딸 A씨의 아이와 본인의 아이를 바꿔치기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B씨는 "출산 사실이 없다"며 지속적으로 혐의를 부인하는 가운데, 당시 증거자료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던 경찰은 뒤늦게 수사 인력을 보강한다는 소식을 전해온다.
항간에 논란이 된 딸이 낳은 아이의 묘연한 행방에 대해 한 범죄심리 전문가는 "딸이 낳은 딸보다 자신이 낳은 딸이 훨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기심에서 일어나는 경우들도 예측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만약 외조모가 자신의 숨겨진 자식을 위해 친딸을 속여 아이를 바꿔치기 했다면, 그 어떤 행위로도 용서 받을 수 없는 반인륜적인 범죄일 것이다. 그런게 아니라면 친딸과의 합의하에 은밀한 거래(?)가 있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의 자식, 또는 자매일 수도 있는 아이를 빈집에 버리고 나갈 수 있는건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혹여나 피가 섞이지 않은 생판 모르는 아이일지라도 말이다.
A씨의 입장에선 쓸쓸히 혼자 세상을 떠난 아이가 친자가 아니라 엄마의 혼외자일 경우 모성으로서의 죄책감을 상당부분 내려놓을 수도 있다. 친엄마의 계략으로 내 아이가 아니란 걸 모르고 살아왔던 세월이 어쩌면 본인 나름의 면죄부가 될 수도 있겠다.
국과수의 유전자 검사를 못 믿겠다는 B씨에게 모성이란 무엇일까. 비단 이 사건이 혼외자가 엮인 치정극이 아닌 아동방임 사망사건으로 끝맺음 되어지길 바랄까.
나는 의문이 든다. 바로 윗집 아이의 울음소리가 외조부, 외조모에겐 들리지 않았는지. 알고도 안 살린건지, 몰라서 못 살린건지. 어른들의 비정함에 오늘도 꽃 한송이가 졌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격언이 의심되는 날들이다.
이은지 편집2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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