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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봉(시인, 광주대 명예교수, 대전문학관장) |
무엇인가를 수집하는 일은 사람들의 오랜 본능일 수도 있다. 본능에 충실해서일까. 아버지와 달리 나는 책을 모으는 버릇이 있다. 실제로는 그것들을 버리지 못하는 버릇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매달 수십 권 씩 배달되는 문예지조차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 나이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정년퇴직을 할 무렵에는 이렇게 모으고 수집한 책들이 큰 고민거리였다. 연구실이 책으로 가득해 나중에는 꽃게처럼 기어 들어갔다가 기어 나와야 할 정도였다. 우여곡절 끝에 전남 고흥의 중앙도서관에 7톤 트럭 2대 분의 책을 기증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렇게 실어내고도 연구실에는 중요한 책이 적잖았는데, 이들 책은 내가 여생을 보내기로 한 고향 세종시로 가져와 지금 '세종인문학연구소'의 벽면을 채우고 있다.
책 중에는 중요한 연구 자료나 전시 자료가 되는 것도 있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발간한 책은 그것 자체로 역사의 자료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특히 이름 있는 선현들의 문집은 충분히 수장(守藏)할 가치를 지닌다. 수장할 가치를 지니는 것은 예의 고전 자료들만이 아니다. 근대문학 초기의 시집이나 소설집 등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내가 관장으로 있는 대전문학관에도 이런저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근대문학 초기의 자료이 수장되어 있다. 물론 그것들은 모두 대전충남의 여러 문인들로부터 기증을 받은 것이다. 기증을 해준 분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이름을 거론하기가 힘든데, 구태여 한 분을 거론하라면 송백헌 선생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재복, 송재영, 홍희표, 변재열 선생 등이 기증해준 자료도 소중하지만 송백헌 선생이 기증해준 자료는 단연 뛰어나다. 시인의 친필 사인이 들어 있는 시집 '사슴'(백석),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김억), 번안 소설집 '해왕성'(이상협), 신소설 '혈의 누'(이인직) 등이 송백헌 선생이 기증해준 대표적인 근대문학 자료이다. 그밖에 월납북 문인들의 자료도 많이 기증해주었는데, 김남천, 이기영, 엄흥섭, 이태준, 현덕, 임화, 박태원, 한설야, 안회남, 김동석, 김기림 등의 창작집 및 평론집 등이 그 예이다. 송백헌 선생님을 두고 사람들이 대전문학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처럼 근대문학 초기의 수많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기증하는 아름다운 삶을 몸소 실천해온 송백헌 선생이 지난 1월 9일 이승을 떠났다. 조화도 보내고 조의금도 보냈지만 대전문학관의 입장에서는 아쉽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기획전시장을 새롭게 꾸밀 필요가 있어 오는 4월 9일부터 '송백헌 선생 회고전―별을 담은 서재'를 개최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물론 이번 기획 전시는 송백헌 선생의 업적을 선양하고 그분의 대전문학 사랑을 알리려는 데서 출발한다. 전시의 중심은 기증해준 근대문학 자료가 되겠지만 그것만을 전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간적 풍모도 알 수 있게 '인간 송백헌' 코너도 두고, 학문적인 업적을 알 수 있게 '연구자 송백헌' 코너도 두고, 기증해주신 문헌자료를 알 수 있게 '수집가 송백헌' 코너도 둘 예정이다, 기타 학생 등 일반인이 참여할 수 있는 '체험전시' 코너도 둘 생각이다. 이번 기획전시에서는 이처럼 제4장으로 구성해 대전문학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많은 애를 써온 송백헌 선생의 전모를 밝히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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