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수집하고 기증하는 삶의 아름다움 '송백헌 선생 회고전'을 준비하며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칼럼] 수집하고 기증하는 삶의 아름다움 '송백헌 선생 회고전'을 준비하며

이은봉(시인, 광주대 명예교수, 대전문학관장)

  • 승인 2021-03-24 16:56
  • 신문게재 2021-03-25 19면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토마토2019년 12월
이은봉(시인, 광주대 명예교수, 대전문학관장)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모으는 습관이 있는 듯하다. 어렸을 때는 구슬이나 딱지를, 청소년 시절에는 우표를, 나이가 들면 동전과 지폐를 모으기도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한때 동전과 지폐를 모았다. 지금도 오래된 지폐를 모아 붙인 첩책이 어머니 방의 화초장 어딘가에 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수석과 괴목(槐木)을 수집하는 취미도 있었다. 세상의 온갖 새들을 모아 기르기도 했는데, 아버지가 작고한 후 이것들은 집안의 큰 골칫거리였다.

무엇인가를 수집하는 일은 사람들의 오랜 본능일 수도 있다. 본능에 충실해서일까. 아버지와 달리 나는 책을 모으는 버릇이 있다. 실제로는 그것들을 버리지 못하는 버릇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매달 수십 권 씩 배달되는 문예지조차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 나이다.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정년퇴직을 할 무렵에는 이렇게 모으고 수집한 책들이 큰 고민거리였다. 연구실이 책으로 가득해 나중에는 꽃게처럼 기어 들어갔다가 기어 나와야 할 정도였다. 우여곡절 끝에 전남 고흥의 중앙도서관에 7톤 트럭 2대 분의 책을 기증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렇게 실어내고도 연구실에는 중요한 책이 적잖았는데, 이들 책은 내가 여생을 보내기로 한 고향 세종시로 가져와 지금 '세종인문학연구소'의 벽면을 채우고 있다.

책 중에는 중요한 연구 자료나 전시 자료가 되는 것도 있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발간한 책은 그것 자체로 역사의 자료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특히 이름 있는 선현들의 문집은 충분히 수장(守藏)할 가치를 지닌다. 수장할 가치를 지니는 것은 예의 고전 자료들만이 아니다. 근대문학 초기의 시집이나 소설집 등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내가 관장으로 있는 대전문학관에도 이런저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근대문학 초기의 자료이 수장되어 있다. 물론 그것들은 모두 대전충남의 여러 문인들로부터 기증을 받은 것이다. 기증을 해준 분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이름을 거론하기가 힘든데, 구태여 한 분을 거론하라면 송백헌 선생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재복, 송재영, 홍희표, 변재열 선생 등이 기증해준 자료도 소중하지만 송백헌 선생이 기증해준 자료는 단연 뛰어나다. 시인의 친필 사인이 들어 있는 시집 '사슴'(백석),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김억), 번안 소설집 '해왕성'(이상협), 신소설 '혈의 누'(이인직) 등이 송백헌 선생이 기증해준 대표적인 근대문학 자료이다. 그밖에 월납북 문인들의 자료도 많이 기증해주었는데, 김남천, 이기영, 엄흥섭, 이태준, 현덕, 임화, 박태원, 한설야, 안회남, 김동석, 김기림 등의 창작집 및 평론집 등이 그 예이다. 송백헌 선생님을 두고 사람들이 대전문학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처럼 근대문학 초기의 수많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기증하는 아름다운 삶을 몸소 실천해온 송백헌 선생이 지난 1월 9일 이승을 떠났다. 조화도 보내고 조의금도 보냈지만 대전문학관의 입장에서는 아쉽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기획전시장을 새롭게 꾸밀 필요가 있어 오는 4월 9일부터 '송백헌 선생 회고전―별을 담은 서재'를 개최하기로 마음을 모았다. 물론 이번 기획 전시는 송백헌 선생의 업적을 선양하고 그분의 대전문학 사랑을 알리려는 데서 출발한다. 전시의 중심은 기증해준 근대문학 자료가 되겠지만 그것만을 전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인간적 풍모도 알 수 있게 '인간 송백헌' 코너도 두고, 학문적인 업적을 알 수 있게 '연구자 송백헌' 코너도 두고, 기증해주신 문헌자료를 알 수 있게 '수집가 송백헌' 코너도 둘 예정이다, 기타 학생 등 일반인이 참여할 수 있는 '체험전시' 코너도 둘 생각이다. 이번 기획전시에서는 이처럼 제4장으로 구성해 대전문학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많은 애를 써온 송백헌 선생의 전모를 밝히려고 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고교 당일 급식파업에 학생 단축수업 '파장'
  2. 대전 오월드서 에어컨 실외기 설치 작업자 추락해 사망
  3. 열악했던 대전 여성노숙인 쉼터…지원 손길로 '확 달라졌다'
  4. "뿌리부터 첨단산업까지… 지역과 함께 혁신·성장하는 대학"
  5. 대전 중구 교육부 평생학습도시 신규 선정 '중구가 대학, 온마을이 캠퍼스'
  1. 대전교사들 "학교 CCTV 의무화, 사건 예방에 도움 안돼" 의무화 입법에 반발
  2. 계룡산성 道지정문화재 등록 5년째 '보류'…성벽과 기와 무너지고 흩어져
  3. 대전 금고동 주민들 "매립장·하수처리 공사장 먼지에 농사 망칠판" 호소
  4. 사랑의 재활용 나눔장터 ‘북적북적’
  5.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헤드라인 뉴스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르포] 4·2 재보궐 현장…"국민통합 민주주의 실현해야"

"탄핵정국 속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을 하나로 통합하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4·2 재보궐선거 본 투표 당일인 2일 시의원을 뽑는 대전 유성구 주민에게선 사뭇 비장함이 느껴졌다. '민주주의의 꽃' 선거를 통해 주권재민(主權在民) 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발현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저마다 투표소로 향한 것이다. 오전 10시에 방문한 유성구제2선거구의 온천2동 제6투표소 대전어은중학교는 다소 한산한 풍경이었다. 투표 시작 후 4시간이 흘렀지만 누적 투표수는 고작 200표 남짓에 불과했다. 낮은 투표율을 짐..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눈덩이 가계 빚' 1인당 가계 빚 9600만 원 육박

국내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이 약 9500여 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40대 차주의 평균 대출 잔액은 1억 1073만 원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가계대출 차주의 1인당 평균 대출 잔액은 9553만 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지난 2012년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이다. 1인당 대출 잔액은 지난 2023년 2분기 말(9332만 원) 이후 6분기 연속 증가했다. 1년 전인 2..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요즘 뜨는 대전 역주행 핫플레이스는 어디?... 동구 가오중, 시청역6번출구 등

숨겨진 명곡이 재조명 받는다. 1990년대 옷 스타일도 다시금 유행이 돌아오기도 한다. 이를 이른바 '역주행'이라 한다. 단순히 음악과 옷에 국한되지 않는다. 상권은 침체된 분위기를 되살려 재차 살아난다. 신규 분양이 되며 세대 수 상승에 인구가 늘기도 하고, 옛 정취와 향수가 소비자를 끌어모으기도 한다. 원도심과 신도시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다시금 상권이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는 역주행 상권이 지역에서 다시금 뜨고 있다. 여러 업종이 새롭게 생기고, 뒤섞여 소비자를 불러 모으며 재차 발전한다. 이미 유명한 상권은 자영업자에게 비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친구들과 즐거운 숲 체험

  • 한산한 투표소 한산한 투표소

  •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 앞 ‘파면VS복귀’

  •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 대전시의원 후보자 3인 ‘저를 뽑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