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안 기자 |
대전을 담은 글은 잔잔하게 가슴에 와 닿고 상상으로 당시를 재현하거나 인물을 떠올려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스치듯 사라지는 대전을 보는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울림이 있다.
최근에 두 차례 찾아뵌 김수남 작가는 대전을 문학으로 남긴 대표적 작가다. 1965년 학교 수업이 갑자기 휴강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테미길을 걷는 동안 여름 내내 머릿속에 고이고 고였던 생각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유천동 집에서 그날 9시간 만에 원고지 87장 분량의 소설을 써냈다. 그것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소설 '조부사망급래(祖父死亡急來)'이었다.
1980년 그의 작품 '달바라기'는 전쟁 후 대전천 주변에 판잣집에서의 삶을 그린 소설인데 근대 대전시민들의 삶이 잘 묘사되어 있다. '두꺼비집처럼 일렬종대로 늘어선 판잣집은 바람불면 비명을 질렀다'는 묘사며, 대전천에서 남녀노소 없이 여름밤 즐기던 목욕, 쌀겨를 섞어 만든 비누, 수제비 등은 그 시대 대전을 살아간 작가의 체험이 녹아 있는 것이다.
그는 특히, 1950년 7살 나이로 대전역을 출발하는 마지막 피란 열차에 오른 뒤 영천 외갓집에 잠시 머문 뒤 다시 대전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대전 유천동에서 문학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내달 새로운 소설을 발간할 예정으로 기대가 크다.
소설은 아니지만, 지역 인물의 회고록 역시 지역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2016년 작고한 김보성 전 대전시장은 '질러가도 십리 돌아가도 십리' 책을 남겼는데 대청댐, 서대전네거리, 울바위골 정수원(화장장)처럼 대전에 밑거름이 된 여러 경험담이 담겨 있다. 대전에 근대시대를 연 대전역사(驛舍)는 1958년 당시 철도청에 근무하던 23세 이상순 씨가 설계했는데 그는 1993년 세계를 견문한 설계 전문도서 '건축편편상'을 냈는데 대전역 설계에 일화를 이렇게 담았다.
"전쟁 후 대전역사 복원사업에서 고지식한 미국 고문관이 지붕을 씌워라, 면적을 줄이라는 등 중요조건과 맞서다 협상된 설계가 지금의 대전역사 원형이었다"고 회고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역을 주제로 글을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담고, 연극 하고, 영화를 풀어내는 이들이 하나하나 소중하게 다가온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