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익준 경제사회교육부 기자 |
3·8 민주의거는 2가지 의미가 있다. 전국적으로 4·19 혁명의 도화선 역할, 지역적으론 지역 민주화운동의 효시로서다. 하지만 3·8 민주의거가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 전부터다.
국가기념일 지정은 3년 전, 정부기념식 격상은 2년 전에 이뤄졌다. 진작에 끝냈어야 할 일들이다. 그날의 함성이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무관심 때문이다. 참가 인사들을 중심으로 노력이 이어졌지만, 지역 사회의 관심은 낮았다.
자연히 3·8 기념사업은 이렇다 할 지원 없이 진행됐고, 정치권도 목소리만 높일 뿐 실질적 도움은 없었다. 그 결과, 3·8 민주의거의 역사적 가치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할 뿐 아니라 다른 민주의거에 비해 위상도 낮게 평가받고 있다.
당시 대전지역 고등학생 1000여 명이 항거한 3·8 민주의거는 4·19 혁명에 직접적 영향을 끼쳤다. 2·28 대구 학생의거를 이어받아 지역에 민주·정의·자유의 정신을 뿌렸고, 이는 3·15 마산의거로 이어져 4·19 혁명을 촉발했다.
그런데도 2·28 대구 학생의거는 첫 도화선, 3·15 마산의거는 결정적 단초로 주목받는 반면 3·8 민주의거에 대한 평가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다른 지역에선 3·8 민주의거를 저평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2·28 대구 학생의거로 파생된 지역별 학생운동 중 하나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엄연히 사실과 다른 얘기다. 사전 발각돼 경찰과 학교 측 방해에도 학생들이 거리에 나서고, 연합시위형태를 계획했다는 점에서 3·8은 민주의거로써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2·28 대구 학생의거를 3·15 마산의거로 이어주는, 전국적 시위 확산에 불을 댕긴 역할도 크다.
낮은 인지도도 문제다. 국가보훈처의 민주운동 10년 주기 기념사업 기본구상 연구에 따르면 3·8 민주의거를 잘 모른다는 응답이 44%에 달했다. 진행 중인 기념사업도 다른 의거와 배 이상 차이가 난다.
이젠 지역민들이 나서야 한다. 3·8 민주의거의 재조명과 전국적인 인지도 확산을 위해선 우리들의 관심이 필수적이다. 이제라도 대전시가 3·8 계승·발전 기본계획을 마련한 건 다행이다. 명심하자. 그날의 함성을 오늘의 정신으로 이어가는 건 우리들이란 사실을.
송익준 경제사회교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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