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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다. 회사 옆 아파트 화단의 동백꽃이 피었다. 남도 바닷가 동백꽃은 벌써 흐드러지게 피었을 것이다. 계절은 어김없이 바뀐다. 인간세상은 소란스러운데 자연은 그것과는 무심해 보인다. 때가 되면 꽃이 피고 미풍이 불어오니 말이다.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아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익는 오월이면 보리내음 새 어느 것 한가진들 실어 안오리 남촌서 남풍불때 나는 좋데나~' 봄이 오는 기미가 보이면 난 이 노래를 흥얼거린다. 박재란의 '산 너머 남촌에는'이다. 노랫말이 이쁘다. 토속적이고 정감이 간다. 파인 김동환의 시다. 1927년에 발표했다. 시인 김동환은 당시 이 시를 어떤 마음으로 썼을까. 나라 잃은 식민지배 아래 주권을 잃은 한 사람으로서 나라를 찾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왜냐면 훗날 김동환은 친일 부역을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쓴 시인으로서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시인의 사명을 생각한다. 시인으로서 뛰어난 작품을 남긴 서정주도 그렇다. 가슴아픈 일이다. 이 노래를 생각할 때마다 착잡해지고 안타깝다. 인간은 완벽한 인격체가 아니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이다. 하지만 한 시인이 그런 잘못을 했다는 건 용납하기 어렵다. 작가의 삶의 방식은 작품과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예전에 친구들과 직장 동료, 후배들과 노래방에 가면 이 노래를 부르곤 했다. 못 부르는 노래를 나는 한껏 감정을 잡고 불렀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나의 놀이터는 앞 산이었다. 큰 무덤이 몇 개 있는, 잔디가 잘 자란 곳이었다. 아이들이 놀기 좋은 곳이었다. 햇볕이 잘 들고 넓어서 자치기, 술래잡기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동네 아이들이 다 모여 동네가 떠나가라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나는 햇살이 따사로운 봄이 오면 그 곳에 앉아 한없이 먼 곳을 응시했다. 저 멀리 아득한 곳엔 어떤 사람들이 살까, 그 곳엔 무엇이 있을까. 끝없는 상상은 나를 미지의 세계로 데려갔다. 들판을 지나 산과 산이 겹친 너머에 언제 가 볼 수 있나. 봄이 오면 한껏 부푼 꽃봉오리처럼 나도 막연한 희망에 부풀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래봤자 기껏 부여였는데 말이다. 어린 나로선 가 보지 않았으니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나이를 먹은 어른이 된 나는 꿈이 있을까. 내 꿈은 무엇일까. 내 꿈을 찾아야겠다. 다시 봄이 오지 않는가.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익는 오월이면 보리내음새'. 흥얼흥얼.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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