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난 사람은 반드시 가게 되어있고, 헤어진 사람은 또 다시 만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저는 여중시절부터 여고 때까지 특기 생활로 웅변을 했었습니다. 그때 웅변 특별반을 맡으셨던 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당시 제가 너무 어린 나이였는지 선생님의 관심이나 제자에 대한 애정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47년이란 세월이 지나 올해 환갑을 맞았습니다.
제 나이 61세, 지금부터 5년 전쯤 대청댐에 봄 풍경을 구경 갔다가 우연히 선생님과 뜻밖의 재회를 했는데, 선생님께서 저를 어릴 적 여학생으로 생각하고 계시는지, 어깨를 꼭 끌어안고 "내 딸"이라고 하시며 당신의 제자는 "딸이나 마찬가지"라고 동행하신 분들께 소개하셨습니다. 나와 동행한 친한 언니들에게도 자랑하시고 못 본 세월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했다"고 하셨습니다. "단발머리 여중 학생 때 주종순을 항상 기억하시면서 만날 날을 기다렸다"고, 많이 궁금했다고 너무 너무 기뻐하셨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실 때 죄송스럽고, 영광스럽고, 숨고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곤 선생님은, 일행들이 있으니 꼭 다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기로 하자고 약속하시며 연락처를 주시고 그 자리를 급하게 떠나셨습니다.
그때 나와 동행했던 언니들도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스승님이 계시지만 그렇게까지 나이 많은 제자를 기억하시고 "보고 싶었다"고 스스럼없이 예뻐하실 수 있는지 엄청 많이 의아해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난 후 선생님과 다시 만나 쌓인 얘기며, 여중학생 웅변부 활동 때 선생님이 느끼셨던 내 모습이 어떠했는지 이런 저런 대화를 하다 보니 지금은 아버지보다도 훨씬 더 가깝게 지내며, 애정과 신뢰로 선생님을 존경하면서 자주 뵙고 의지하고, 만남을 갖고 지내고 있습니다.
특히, 제가 선생님과 재회한 뒤에 암에 걸려 고생하는 것을 보시고 안쓰럽게 생각 하시며, 제자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살리시려고 노력하시는 것을, 아주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저에겐 아버지만큼 귀중하고 고마우신 은사님이십니다.
제가 중 3때, 지금 기억으로 방송국 MBC에서 주최한 대통령배 전국 웅변대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선생님께서 지도해주시는 대로 완벽하게 잘했다고 생각했고, 카메라 기자들도 최고였다고 칭찬도 많이 했는데 막상, 시상 발표할 때는 저는 국무총리상에 그쳤습니다. 너무 아쉽고 속상했습니다.
어린 제가 많이 속상해 있는 것이 안 돼 보이셨는지, 선생님께선 저를 달래주시려고 방송국 가까이 있는 짜장면집으로 데리고 가시더니, 많이 먹으라고 위로하시며
"네가 정말 잘했는데 어쩌다 그렇게 순위가 나왔는지 다음을 기약하자"며 다독여 주셨습니다.
그 일이 평생 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다가 뜻밖의 장소에서 선생님과 마주치니 반갑기도 하면서 얼굴에 주름진 제 모습이 부끄러워 숨고 싶었던 것입니다.
선생님과 헤어져 지낸 47년 동안 선생님은 우리나라 언론사 여러 곳에서 아주 유명한 공인이 되어있으셨습니다. 대전에 있는 중도일보를 비롯해 15개 언론사에 수필과 칼럼을, 그리고 예술 분야에 관한 칼럼이나 평론도 쓰시고, 극작가로서 명성을 떨치시고, 정치 평론가로서도 글을 쓰시고 계셨습니다.
안타까운 일은 지난해 11월 초인 4개월 전 쯤 선생님의 아내분이 오랫동안 치매를 앓고 계시다가 저 세상으로 가신 것입니다. 연세도 고령이신데 당신께서 타고다니시는 차를 보며, "사랑하는 내 아내 차(車)다"하시면서 빨강 소형차를 가리키셨습니다. 저는 운전도 안 해 선생님 차도 여러 번 얻어 타고 어느 때는 집까지 데려다주시고 어느 때는 볼 일 있는 곳까지도 데려다주십니다.
사랑하는 제자가 암 환자라 바쁘신 가운데도 강한 애정과 정성으로 돌봐 주시는 고마움을 지울 수 없습니다.
선생님은, 사모님 돌아가시고 잠시나마 엄청 초췌하게 힘들어 보이시며 불면증 때문에 고민 하시더니, 이 세상에 많은 스승님들 중 유독 제자관리(?)를 잘하신 덕에 보약이며 불면증에 좋은 약이며 신경 써 주는 제자들과 주변 지인들 덕분에 지금은 안색이 좋아지셔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선생님과 재회 전엔 몰랐는데, 지금 제가 항암중이라고 선생님이 얼마나 배려를 많이 하시며 제자인 저를 생각해 주시는지 진짜 감동스러워서 선생님이 오래 사시고 건강하게 계셔야 저도 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젠 선생님이 얼마나 허물없고 아버지보다도 더 친해질 수 있는 것인지 같은 땅 하늘 아래 같이 가는 세월 속에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욱 절실하게 느껴집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저에게 시간이 있으실 때마다 글 쓰기를 가르치십니다.
어릴 땐 공부를 가르쳐 주셨고, 지금은 인생도 가르쳐 주십니다. 선생님께서 최근에 자주 하시는 말씀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은 본인의 기족에게 존경받고 인정받는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세상에 태어날 때 부모님의 사랑으로 태어나, 내 사랑하는 가족을 가졌으니, 사랑하는 가족에게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는다면, 그보다 더 잘 사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엊그제 보리밥 집에서 신나는 대화 하다가 웃는 선생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 웃으시는 모습이 크레용으로 방바닥에 칠해놓고 빗자루 들고 쫓아가는 엄마한테 혼나지 않으려고 신나게 도망가는 장난꾸러기 귀여운 어린 아들 얼굴 같은 표정을 보았습니다.
스승님 인상에 대한 표현을 이렇게 한다는 것은 건방지고 나쁘시겠지만 진짜 귀여워 보였어요.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잘 못 했 떠(?)요 ㅎㅎ!
자그만 한 체구에 아주 강한 필체로 글을 쓰시는 선생님….
"나 많이 살아야 10년이다"라는 말씀 절대하지 마시고, 지금처럼만 강건하시고 바쁘게 사세요. 그리고 제자들 더 많이 가르치시고요. 인생 교육도 한 과목 더 늘리시고요. 현재 시대처럼 스승님이 때렸다고 고소하고, 주먹질이나 하는 스승 아닌 모습의 스승도 있는 시기에. 스승님과 제자로서의 어려운 경계 없이, 한없는 너그러우신 모습으로, 언제까지라도 교육과 인생의 스승님으로 든든하게 이 세상에 계셔 주세요. 제자의 바람입니다.
선생님~~
47년 만에 다시 만나 많은 도움과 용기를 주셔서 진심으로 존경하고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된 것, 하나님이 저에게 베푸신 사랑입니다!
주종순/ 충남여중 5회 졸업생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