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기에도, 행복 찾기에도 짧은 인생 아닐까? 혼자 즐기는 것이 남까지 즐겁게 하면 얼마나 좋으랴. 남을 즐겁게 하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 최고의 선행이란 주장도 있다. 남을 즐겁게 하는 직업이 부러운 적도 있다. 언제쯤일까? 방송에서 갑자기 그들이 사라졌다. 정치풍자 금지 때문이란 소문도 있으나, 시대변화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 프리랜서 시대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지 않은가? 개인 가치 직거래 시대이다. 자리 잃은 종사자가 연예프로그램 진행자로 변신하거나 새로운 콘텐츠 개발에 도전한다. 유튜브, 넷플릭스, 아마존 등 개인방송에도 많이 보인다.
다른 사람 웃기는 개그(gag)가 얼마나 복된 일인지 잠시 잠깐 잊은 것일까? 몇몇 개인방송이 눈에 거슬린다. 편 가르기에 이용한다. 남 욕하기에 활용한다. 일부 팬덤의 호응에 고무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탁월한 재능이 남용되는 것이다. 본말전도(本末顚倒)이다. 나아가 죄짓는 일이다. 반어적인 블랙코미디도 아니어서 자신도 즐겁지 못하리라. 본인에게마저 행복이 달아날 것이다.
조직이 나서면 어떻게 될까? 할 일이 그렇게 없을까? 지도자라 자칭하는 이들이, 패싸움 부추기고 투쟁에 앞장선다. 생사를 건듯한 싸움이 보기 민망하다. 항거가 벅차지면 행복 에너지 전달자는 숨게 된다. 혼자 웃는다.
갈등구조가 대부분 인간사일까? 어느 시대나 은일 사상이 깔려있고 은일자가 등장한다. 천학비재(淺學菲才) 임에도 많이 접하게 된다. 가난하면 어떠하랴. 세상 부귀영화에 얽매이지 않고 주어진 삶 그대로 향유 한다. 유유자적(悠悠自適)이다. 벗 맞이할 준비로 술 빚으며 기뻐하고, 나물 먹고 물 마시면서도 책 모으기에 열중이다. 그런 심사가 시에 자주 드러난다. 시의도 소재가 된다. 현실에 찌든 진솔한 고백이요, 동경하는 생활상이었으리라.
해동제일통유(海東第一通儒)로 불려진 김정희(金正喜, 1786 ~ 1856)는 학문과 시서화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신지식인의 기수요 선각자였다. 빼어난 실력과 청고고아(淸高古雅)한 성격 탓에 견제가 심하여 제주도로 함경도로 유배도 다녀오나, 사람 사귀기에 개방적이어서 중인 제자가 많았다. 존경하고 따르는 서화가도 많다. 그가 아꼈던 화가로 전기(田琦, 1825 ~ 1854)가 있다. 그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듯하다.
29세 짧은 생이다. 개성 출신으로 약포를 경영하고 화상도 겸한다. 중인 시사 모임인 벽오사 일원으로도 활약한다. 스승을 닮았을까, 다방면에 재능이 출중하였던 모양이다. 추사의 사의적 문인화론을 가장 잘 이해하고 구사하여 주위로부터 크게 촉망받는다. 어쩌랴, 다 보여주지 못한 뛰어난 재능, 턱없이 짧은 삶이 안타까울 뿐이다. 전하는 작품도 십여 점에 지나지 않는다.
매화서옥도, 전기, 마본담채, 88 × 35.5㎝, 1849년, 국립중앙박물관 |
"눈 내린 숲에 매화가 피고 / 서풍 불자 기러기 줄지어 나네 / 산골짜기 적막해 인적 없으니 / 즐거이 임포처사 집 찾기 좋겠네 / 기유년(1849) 여름(雪意園林梅己花 / 西風吹起?行斜 / 溪山寂寂無人跡 / 好問林逋處士家. 己酉夏日)"
제화시는 예찬(倪瓚, 1301 ~ 1374, 중국 원나라 화가)이 읊은 시이다. 제화시에 등장하는 임포처사는 은일시인 임포(林逋, 967∼1028, 중국 송대)이다. 임포는 권문세가를 멀리하고 평범한 풍류객과 벗하며 은둔하여 살았다. 비판적이기보다 고상한 즐거움에 빠졌다 한다. 매화를 아내로, 학을 자녀로, 시를 벗 삼은 고매한 성품 덕에 당대에도 사람이 문전성시였고 현세에도 만인이 함께한다.
이런 사람이 구름 걷어내고 양지로 나왔더라면 세상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즐거우면 주변 사람 역시 즐겁다. 내가 웃으면 세상도 웃는다. 선사할 웃음이 없으면 스스로 웃기라도 하자.
웃음에 인색할 필요가 있겠는가?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 웃는 입으로 만복이 들어온다. 웃어야 복이 온다. 젊어지는 것은 덤이다. 웃음도 복도 주인이 따로 없다. 마음 문이 열리면 절로 굴러들어온다.
'의지나 행동이 성격과 정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라고 하는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 ~ 1910, 미국 철학자)가 말한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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