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팔공산의 王(왕) 자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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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톡] 팔공산의 王(왕) 자 감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 승인 2021-03-05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10월 세 번째 일요일에 교원산악회 관광차를 타고 대구 경산에 있는 팔공산으로 산행을 떠났다. 모처럼 만에 마음먹고 가는 산행길이라 등산 가방에, 등산화에, 등산모에, 스틱에, 점심 준비까지 빠진 것이 없이 챙기느라 챙겨서 그런지 기분은 상쾌한데 부담스런 가방 무게로 어깨가 고생스러웠다.

쉬엄쉬엄 오른 팔공산 갓바위는 팔공산의 남쪽 봉우리인 해발 850m 관봉 아래 위치한 석불 좌상이다. 정식 명칭은 관봉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 높이 4m 불상의 머리에 두께 15㎝, 지름 180㎝의 넓적한 돌이 얹혀 있다. 갓을 쓴 것처럼 보여 갓바위 부처로 불린다. 또 갓이 대학의 박사모처럼 보여 수험생을 둔 부모에게 대학 입시에 영험할 것이란 믿음을 주기도 한다.

팔공산 갓 바위를 가면 누구나 볼 수 있는 문구가 있는데, 간절히 빌면 소원을 성취한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그런지 9월 10월 주말에는 수능 시험을 앞둔 전국 각지의 학부모가 1만여 명이나 몰려든다고 했다.

아무튼 팔공산 갓바위는 소원성취 기도처로 유명한 곳이다.



갓바위 아래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인산인해(人山人海) 그대로였다.

입시 수험생을 둔 학부모를 비롯해서 자녀 못 낳는 사람 낳게 해달라고 빌러 온 사람, 사업상 돈문제 갈등으로 온 중년 남자, 남편의 고질병 쾌유를 위해 빌러 온 여인, 아들 사업 성공 기원을 위해 온 어머니, 유학 간 자녀 잘 되게 해 달라고 빌러 온 여인, 명년 국회의원 선거에 남편 당선되게 해 달라고 온 아내, 장애인 자녀를 위해 빌러 온 어머니, 자녀 시집 장가 잘 가게 해 달라고 온 어머니, 그야말로 천태만상의 부류들이 각양각색의 기도 내용으로 소원 성취를 위해 간절한 마음을 쏟아 놓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간절한 마음이 모두 집합해 있는 곳이었다.

아니. 가장 간절한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이, 정성이, 사랑이, 기원이 숨 쉬며 똬릴 틀고 있는 곳이었다.

인간사 애로상은 빠지지 않고 다 모인 애로상 종합백화점이었다. 사람도 다양하고 소망은 더 가짓수가 많은 인간 시장 그대로였다. 갓바위를 지났는데 갑자기,

"남선생님! 세상에 이런 감도 있나요? "

부르는 소리에 급히 다가가 보니 같이 갔던 김수환 선생님이 탐스럽고 예쁜 감 하나를 들고 만지작거리며 호기심어린 눈으로 이리 저리 살피는 것이 아니겠는가!

신기하게도 이 감엔 王(왕)자가 천연 무늬로 까맣게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감의 출처를 물었더니 타고 온 관광버스에서 내려 팔공산 올라올 때 얻은 감이라 했다. 산기슭은 전국에서 모여든 관광객들이 빨갛게 익은 감을 장대기로 따는데 거기서 몇 개 얻어 온 것 같았다. 그 중 하나가 별나게 생긴 이 감임에 틀림없었다.

물론 나도 그 때 올라오다 감 몇 개를 얻었지만 내 감은 지극히 평범한 것이었다.

욕심이 많은 김 선생은 그걸 집으로 가지고 가고 싶었지만 선명한 王자가 마음에 꺼림칙하여 그 감을 불길한 쪽으로 생각하고 버리려다 나를 부른 것 같았다.

나보고 그 감을 가질 테면 가지라고 했다. 순간 나도 이 감을 길한 쪽, 불길한 쪽으로 저울질하다가 길한 쪽으로 마음을 굳혀 집에 가져 오기로 했다.

왕조실록이나 선인들의 고사에 나온 것을 보면 ' 용(龍)이나 왕(王), 거북'의 상징 표상은 모두가 귀한 것이나 길한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또 집에는 고3 수험생 아들놈이 서울대학 진학을 목표로 수능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대감으로 집에 가지고와 내 놓으며,

"영민아! 이 감을 먹으면 네가 수능도 잘 보고. 목표로 하는 서울대학도 무난히 갈 수 있을 것 같아 영산으로 소문난 갓바위가 있는 팔공산에서 따온 것인데 한 번 먹어 볼래?"하니 아들놈은 주저주저하였다.

'용(龍)이나 왕(王), 거북'은 역사나 고사 성어를 살펴봐도 모두가, 길한, 좋은 일들이 생길 때 등장하는 것이라 했더니 그제서야 아들놈은 별 다른 의심 없이 먹어보겠다고 했다.

역시 인간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여 달나라를 오가는 세상이라 하지만 과학의 힘으로 안 되는 인간의 불안 심리, 기대 심리, 호기심 같은 것이 작용하여 과학으로 이해할 수 없는 미신적인 것에도 의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사 학위를 가진 과학자 집안에 난치병 환자가 있을 때 최신 의술이나 과학을 총동원하고 좋다는 것을 다 해봐도 안 될 때에는 무당굿이 좋다면 그 굿까지 하는 아이러니한 일을 보았는데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과학문명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 합리적인 과학을 위주로 살아야겠지만 과학의 힘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인간의 불안 심리, 기대 심리, 호기심 같은 것을 고려할 때 과학 위주로만 해결하려는 고집으로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놈이 서울대 합격을 한 것이 전적으로 팔공산의 王(왕) 자 감을 먹어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아들놈의 초조감 불안심리 해소에 도움이 된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 하겠다.

나는 팔공산 산행 중 갓바위에 모여든 전국적인 인파를 보고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다.

팔공산 갓바위의, 전국에서 모여든 인산인해 인파의 기도 내용은 모두가 자신들의 소원 성취를 위한 것이 100%이다, 내 자식, 내 가족, 내 아내, 내 남편, 나만을 위한 것이다. 100% 소원성취 기도 중 10%만이라도 내가 아닌, 남을 위한, 사회를 위한, 국가를 위한, 지구촌 가족을 위하는, 마음의 기도가 된다면 우리는 보다 따뜻하고 밝은 사회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팔공산 갓바위 불상 앞에 운집하는 모든 이의 기도가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팔공산 王(왕)자(字) 감의 영험으로 우리 모두가 따뜻한 가슴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내 가족을 위한 정성과 사랑이, 간절성이, 우리 모두의 평화를 위한 바람의 기도였으면 좋겠다.

갓바위 불상 앞에 드리는, 세상에서 가장 간절한, 우리 어머니들의 마음이, 너와 나의 우리 모두의 마음에 등대의 불빛이 되었으면 좋겠다.

팔공산의 王(왕) 자 감

내 아들 명문대 들어가는데 영험이 된 그 감, 주렁주렁 열려, 갓바위 아래 모든 사람의 기원까지 모아 우리 모두가 평화의 주인공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남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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