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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정 시인 |
말이나, 문장은 마음을 실을 때 아름답다. 부사나 형용사를 아무리 많이 사용해도 마음이 담긴 문장을 이길 수 없다. 언어라는 것이 상대방과 소통을 하기 위해 쓰이는 도구이지만 이것은 단순한 해석이고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되고 문장이 이야기로 만들어져 내 생각을 전달할 때 꼭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몸에 깊숙이 살고 있는 고향 말이다.
편한 사람을 보면 고향 말이 술술 나온다. 거의 대부분이 시장이나 술집이나 식당이다. 좌판에서 상추를 파는 할매를 보면 어김없이 "할매, 얼마요?"를 외친다. 그런 나를 보고 "이쪽에 사는 사람이 아닌가 보네!" 라고 묻는다. "무안이요!" 물론 지금은 그런 것조차 묻지 않는다. 이제 내가 어디 산産인지 알기 때문이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지 7년이 지났다. 시장 좌판에서 할매(할머니)나, 아짐(아주머니)을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도 좌판에서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그 모습을 아직 잊지 않고 있어 좌판의 할매나 아짐을 보면 엄마가 알려준 말이 술술 나온다.
내가 대전에 뿌리를 내린 지, 26년이다. 고향에서 살았던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대전에서 보내고 있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대전에 자리를 잡고 산 시간만큼 고향 말은 더 깊게 마음에 뿌리를 내렸다. 엄마가 보고 싶으면 중앙시장에 갔다. 고향 가는 길이 그리워지면 서대전역에 들린다. 무안 남산이 생각나면 보문산을 걷는다. 고향에 있는 사람들이 그리워지면 대전에서 만난 인연들을 만난다.
26년 전, 중앙시장도, 서대전역도, 보문산도 낯설었다. 혼자라고 생각했다. 학업만 마치면 대전을 떠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간이역이라고 여겼던 대전을 떠나지 못하고 대전 사람이 되었다. 대전에서 아내를 만났고 아이가 태어났고 엄마를 보내드렸다.
가끔 고향에 행사가 있어 가면 대전이 고향이라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웃음이 터지는 이유가 있다면 말투 때문이다. 말은 전라도인데 고향이 충청도라고 하니 사람들이 웃는 것이다. 말과 고향이 일치하지 않지만 나의 고향은 대전(大田)이다. 큰 밭에다 마음의 고향에서 가져온 고구마도 심고 양파도 심고 푸성귀도 심는다. 가끔 뻘낙지나, 홍어에 대해 일장 연설도 빼놓지 않는다.
이제 무안에 가면 대전 이야기를 한다. 두부두루치기와 칼국수는 물론이고 보문산, 대전역, 중앙시장을 건너 대전 천을 꺼내오고 갑천과 성심당도 단골 메뉴처럼 차린다. 단골 밥집(부안 집밥)이나 술집(대전부르스, 아리랑)에 고향에서 온 인연을 모시고 가겠다고 호객행위까지 한다.
26년 전 대전과 지금의 대전이 변한 것이 있다면 마음이다. 황량하기 그지없던 대전이 엄마가 알려준 말로 대전을 이야기하고 있다. 봄이 다가오니까 엄마 생각이 나서 고향 타령을 하고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의 내 고향은 대전이다. 고향은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고 어떤 풍파에도 안아주는 힘이 있다. 그런 곳이 나에게 대전이다.
오늘 중앙시장에 가서 삼겹살 한 근 끊어 굽고 상추 한 근 할매한테 사야겠다. 빼놓지 않고 소주(린)도 한 잔 해야겠다. 물론 엄마가 알려 준 고향 말로 가격을 물어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런 것이야 말로 지역사랑이라고 말해도 될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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