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가 곧잘 회자된다. 그 가운데 K-pop도 있다. 무엇이라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pop은 대중음악을 이르는 말이지만, 영미권 음악으로 한정하기도 한다. 따라서 다른 지역 대중음악은 pop 앞에 국가 첫 영문자(initial)를 붙이기도 한다. 한국의 댄스음악이라 규정하기도 한다. 동북아시아를 시작으로 아시아, 중동, 유럽을 거쳐 아메리카에도 안착했다. 문화콘텐츠 최강국이요, 최대 소비국인 미국 시장에서 뚜렷한 성과를 낸다는 것은 괄목할 만한 일이다. 말만 한류지 한국은 없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화된 영미 대중음악임은 분명하다.
연속극이 한류 시작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그렇다고 연속극 역사가 엄청나게 긴 것도 아니다. 1961년 12월 31일 KBS-TV가 개국 되었다. 전에는 유랑극단이나 AFKN 미군 방송을 통하여 문화에 대한 갈증, 새로운 문화에 대한 욕구를 해소했다. 별 경쟁 없이 방송하다 보니 콘텐츠도 다양하지 못했다. 민영방송 SBS가 1990년 11월 설립되고 1991년 12월 지상파 TV 방송을 개국하면서 보다 콘텐츠가 다양화되고, 경쟁 체제가 이루어진다. 같은 시기 STAR TV가 5개 채널 서비스를 시작한다. 본격적인 위성방송 시대가 도래한다. 좁은 국토가 조밀한 주거문화의 바탕이 되고, 그 주거문화가 신속한 통신망 구축을 가져와, 덕분에 단기간 TV 보급이 왕성하게 이루어진다. 이것이 TV 전성시대를 열었다는 견해도 있다. 시청률 경쟁이 강화되면서 오락성이 강조되고, 그에 따른 저질 비판도 일어난다. TV 전성기이기도 하다. 경쟁 가속화로 연예인 전속제가 사라지고 다양한 연예기획사가 등장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연속극 수준이 높아졌다는 진단도 있다. 덕분에 연예인 신드롬(syndrome)이 일기도 한다.
MBC가 제작한 주말 연속극 '사랑이 뭐길래'가 1997년 중국에 수출된다. 한류 출발점으로 보기도 한다. 1993년 중국에 수출한, 감각적 영상과 감성이 돋보이는 트렌디드라마(Trendy Drama) '질투'(MBC, 최연지 작, 이승렬 연출)가 한류의 기원이란 주장도 있다. 영상세대 기호를 충족시키고, 영상 감각이 돋보이며, 시대의 유행을 민감하게 반영하는 장르라고도 한다.
K-pop인들 그냥 만들어지겠는가? 우리 전통정서에 유입된 서양음악과 AFKN, 영상 음악전문 채널 미국의 MTV 등이 미친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1992년 3월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던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내한공연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대부분 열광하는 청소년 걱정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인기가수로 활동하다 MC로 전향, 지금은 연예기획자로 활동하는 이수만은 자신을 새롭게 충전하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원에 유학한다. 1985년 컴퓨터 엔지니어링 석사학위를 받는다. NASA에 일하는 것이 원래 꿈이었다 한다. 유혹을 물리치고 귀국하여 사업으로 전향한다.
'한류의 역사'(강준만, 2020)에 의하면, 이수만은 이태원 디스코텍 DJ, 인천 월미도에서 운영한 카페로 마련한 5천만 원 종잣돈으로 1989년 SM기획을 설립한다. 시대의 변화를 읽어낼 줄 아는 천부적 자질이 있었나 보다. 미국 생활을 통하여 섬세하고 체계적인 연예계 시스템 구축과 미국 음반 시장의 분업화, 전문화에 충격받는다. 연예산업 전문가, 마케팅 전문가, 변호사가 함께하는 에이전시 존재도 놀랍다. 국민소득 1만 달러 이상이 되면 대중문화 소비자가 10대라는 것도 깨닫는다.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도 인지한다.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된 현진영으로 엄청난 손해를 입은 탓이기도 하지만, 연예인 사생활 관리 필요성도 깨닫는다. 연예기획사 표준이 되기도 한 소위 '인-하우스 시스템'이 그것이다. 트랜디한 미국음악에 10여 년 전부터 발전시켜온 일본의 아이돌 육성시스템을 접목, 새로운 음악이 탄생된다. 이 모든 것을 SM 기획사에 고스란히 녹여낸다. 이어서 수많은 기획사가 탄생하며 대중문화 주축이 된다. K-pop 바탕의 하나가 되기도 한다.
K-pop을 보자면, 외국인 공연에 열광하던 시대에 비하여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어찌 한두 가지로 한류 본질이 설명되랴. 소수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지닌 모든 역량의 총집합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요즈음 주위를 살피자면, 이름만 거창하게 붙이는 경향이 짙다. 동네잔치 하면서 전국 대회라 칭한다. 내용도 없으면서 외국인 몇 명 불러다 놓고, 행사에 세계, 국제라 이름 붙인다. 한류 역시 우리끼리 자화자찬(自畵自讚)하며 호들갑 떠는 것은 아닐까? 그런가 하면 그늘진 곳에서 참 자아를 찾고 환골탈태(換骨奪胎)하기 위해 목매다는 사람도 많다. 그들에게 아낌없는 응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문화의 세기임은 부인할 수 없다. 나아가 문화가 곧 자산이다. 그러나 영속되는 문화는 없다. 뭔가 배울 것을 찾고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것이 문화 속성이다. 부단히 변화 진보한다. 그에 부합되는 일이 무엇일까 자문해보자.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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