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전염병 치료에 대한 기록을 찾던 중 흥미로운 기록 하나를 찾을 수 있었다. 전염병을 앓고 있는 가족들을 치료하고 돌본 기록이 담겨 있는 성재일기(惺齋日記)라는 문헌이다. 저자는 16세기 무렵 경북 안동지역의 양반 금난수(琴蘭秀·1530∼1604)다. 기자에게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에서 몇 대손은 올라가야 찾을 수 있는 직계 조상님이다.
1579년 3월 기록에는 전염병이 3개월 넘게 기승을 부렸던 시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금난수의 큰아들 금경이 전염병에 걸렸고 금난수는 말을 보내 집으로 데려오도록 했다. 다른 아들들은 다른 거처로 보내 집안에서 병에 퍼지지 않도록 했다. 큰아들에게는 혼인한 지 1년도 안 된 아내가 있었다. 집에 와서도 차도를 보이지 않는 남편을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려 했지만, 금난수는 며느리를 아들에게서 격리했다. 아들의 병세가 어느 정도 회복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며느리를 자신의 서얼 아우인 금무생의 집으로 거처하도록 했다. 며느리까지 전염병에 희생시킬 수 없었던 금난수의 의지였다. 제법 부유하게 살았던 금난수의 큰 집은 아들 금경 한 명만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금난수는 자신의 집을 자가 격리의 공간이자 치료공간으로 활용했다. 감염자들은 집에서 자가 격리 겸 치료를 받도록 하고 감염되지 않는 사람들을 철저히 격리한 것이다. 또 다른 기록에 의하면 여종 두 명이 전염병에 걸리자 가족들을 각자의 공간에 분리하고 자신은 서재로 거처를 옮겨 병세를 관장했다는 기록도 있다. 큰아들의 감염된 때와 같은 시기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전염병에 대처하기 위한 세심한 노력이 돋보인다. 전염병을 하늘이 내린 저주라 여기며 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였던 것이 그 시대의 생활상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매우 이성적이고 침착했던 행동이었다.
조선시대 다른 기록에도 비슷한 내용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전염병에 걸린 가족들을 멀리 사는 친척 집에 보내거나 역병에 걸린 고을 전체를 봉쇄하고 일부 사찰에서는 병자들을 불러들여 스님들이 죽을 끓여 먹였다는 기록도 있다. 전염병으로 인한 국난을 서로 연대하며 돌봄으로 극복하려는 모습은 현재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코로나 백신 접종이 곧 시작된다는 소식이다. 백신이 만병통치약이 될 순 없지만,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희망이 조금은 보이는 것 같다. 수백 년 전 우리 할아버지 아니 우리 조상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코로나의 어둡고 긴 터널도 슬기롭게 극복해낼 것이라 기대해 본다.
금상진 기자 jod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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