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구 전문연구위원 |
먹거리 부족에 따른 혼란은 이제 후진국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기후변화와 자연재해에 더해 사상 초유의 코로나 사태는 식품 생산과 유통마저 중단시키거나 봉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에 진입했다지만 식량자급률이 절반에도 못 미치는 한, 강 건너 불 보듯 할 일이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9년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45.8%로서 2009년의 56.2%에서 10년 만에 10% 이상 감소했다.
아직 쌀 자급률은 92.1%에 달하지만, 주식에 필적하는 밀과 콩의 자급률이 낮은 점이 문제다. 2019년에 밀 자급률은 0.7%, 콩 자급률은 26.7%에 불과했다. 정부가 2022년 목표로 삼았던 밀 자급률 목표치 9.9%, 콩 자급률 목표치 45.2%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로, 특히 밀 자급률은 2010년 1.7%에서 오히려 줄어들었다. 더군다나 생존에 필수적인 식량이 부족할 수 있다는 우려로 각 나라가 보호주의의 빗장을 더욱 굳게 걸어 잠그며 식량 가격은 급등하고 있다.
밀 가격이 장기간 오르면 라면, 빵, 과자 등의 제품 가격을 올려야 하는 압박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대두와 옥수수 등 사료로 쓰이는 곡물 가격이 오르면 돼지고기 등 육류 가격도 불안해진다. 자연재해에 따른 식량 생산량 감소는 국내에서도 진행 중이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한 공급망 교란과 각국의 수출제한 등으로 식량 가격 또한 출렁이고 있다. 특히 세계인의 주식이 되는 곡물 가격이 급등했다. 작년 우리나라 쌀 생산량이 5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면서 쌀값이 '단군 이래 최고가'라는 말까지 등장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올해는 더 심한 최악의 식량 위기가 닥칠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재확산과 봉쇄 조치로 이제는 '기근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는 데이비드 비즐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의 경고에 귀 기울여야 한다. 비즐리 총장은 "진짜 전쟁은 지금부터"라며 매우 곤혹스러워했다.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빈곤 퇴치에 힘쓴 공으로 WFP가 작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았지만, 올해는 훨씬 더 힘든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식량안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미리 잘 대비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식량안보에 빨간 불이 켜졌고, 국민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미국, 중국 등에 비해 턱없이 좁은 농지를 보유한 한국이 식량안보를 강화하려면 스마트팜 등의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생산성을 높일 수밖에 없다. 식량 소비량의 90%를 수입하는 싱가포르는 도시 농업, 대체육, 식물성 단백질 생산 등 식품 연구 프로그램에 막대한 비용을 지원하고 팜테크, 식품 분야 스타트업에 온갖 정성을 쏟고 있다. 태생적으로 식량자급률이 10%대에 불과한 중동도 컨테이너 안에서 초록 농장을 가꿔 각종 잎채소를 재배하는 농업 혁신을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스마트팜 실증 고도화 연구 등 농업기술 분야에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아울러 탄소 중립 시대에 맞춰 농산물 재배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생육 환경과 농사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벼농사, 채소와 과일 재배, 가축 사육 과정에서도 많은 온실가스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 땅에서 지속해서 안전한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선, 탄소 중립 이행을 통한 기후변화 극복은 정부와 농업계에서 함께 풀어야 할 숙제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전문연구위원, (사)소비자시민모임 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