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집에 앨범이 있어 찾아보니, 이형구 교장은 내가 70년대 초임지 덕산고등학교에서 교직생활 시작할 때 가르쳤던 제자로 75년 2월에 졸업을 했다.
그 당시 이형구 학생은 촌 면소재지 고등학교에서 공부 잘 하는 모범생으로 성실했기에 상위권 성적을 놓쳐본 적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살아났다. 소탈해서 꾸밀 줄 모르는 촌티 나는 모습이었지만 가슴이 따뜻하고 공부를 잘하며 겸손하여 동료들 간에도 인기가 있었던 것도 기억이 되었다. 당시에 그는 도서위원으로 학교 도서 대출 업무에 종사하느라 도서실에서 살다시피 했었던 것도 생각해 냈다.
후배동료교사의 말을 듣고 5월 6일로 약속 날짜를 잡았다. 약속 날짜 이틀 전에 제자 교장한테서 챙기는 전화가 왔다. 친구한테 차를 부탁해 놓았으니 친구 차를 같이 타고 덕산고등학교로 와 줬으면 좋겠다는 얘기였다.
나는 후배동료교사가 운전을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부인이 운전하고 덕산까지 갈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생각 끝에 내 차로 가겠다고 했으나 제자가 별러서 만든 자리인데 약주 한 잔이라도 하려면 자기 말을 들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후배동료교사 부부는 제자와 친하게 지내는 사이 같아서 설전 끝에 져 주기로 했다.
5월 6일 후배동료교사 부인이 운전하는 차가 왔다, 죄송한 마음으로 차에 몸을 얹었다. 빈 박스 하나를 실었다. 거기에는 제자교장한테 가지고 갈 화원서 사온 황금채홍이란 난 화분 하나가 은은하고도 그윽한 향으로 자기의 존재를 알리며 조심스럽게 자리를 하고 있었다. 조수석엔 후배동료교사가 부인의 운전을 참견하며 가고 있었다.
차는 싱그러운 5월 신록의 산야를 가르며 당진 고속도로를 타고 고덕 톨게이트를 지나 덕산에 도착했다. 올 때 갈 때 유성과 덕산 도로의 가로수에는 신록의 계절과 맞물린 초여름의 이팝나무의 설화가 때 아닌 겨울눈처럼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를 끌어내고 있었다.
오전 10시 30분에 출발한 미인의 운전대는 이야기에 취해서인지 무료하지 않게 정오 12시가 다 되어 덕산고등학교 교정에 도착했다.
예나 지금이나 제자가 소탈한 모습을 하고 솔바람의 세례를 받으며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나 반가웠다.
반가워 너털웃음을 웃는 친구지간의 두 사람, 그 웃음 속에는 만나는 반가움도 있었지만 서로의 잘 되는 것을 비는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것 같았다. 마냥 좋아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송무백열(松茂栢悅)이란 단어가 스쳐갔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고 했듯이 친구가 잘 되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는 말이니 이형구 교장과 한흥석 부장교사를 두고 이르는 말이라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싣고 간 난 박스를 내려놓았다. 이 난은 제주난 농원에서 사온 것이었다. 초임지 학교에서 가르친 제자가 교장이 돼 초청하는 자리인데 어찌 빈손으로 갈 수 있으랴.
난의 리본에는…
『 난의 향으로 승승장구 발전하소서. 75년 제자를 생각하며 남상선 』이란 글씨로 마음을 담아 전했다.
내가 가지고 간 황금채홍 난은 이제 막 터져 나오는 꽃망울로 주변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것은 바로 함초롬한 자태와 수줍은 듯 숙인 꽃봉오리의 매력에서일까.
아니면, 요염하진 않아도 자연의 섭리와 신의 손놀림에서 배어나온 신비스런 색의 조화에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새어나는 미향(微香)과 가녀린 색의 조화에 얹혀 있는 청초함에서일까.
날짱날짱한 여인의 몸맵시 같은 대공에 매달린 꽃봉은 토하는 향으로 난의 멋을 살리기에 충분했다.
교장실 들어가 담화를 나누고 밖으로 나와 교정을 거닐었다. 모두가 낯선 사람을 대하는 듯한 건물들이었다. 72년 첫 부임했을 때 낯익었던 건물과 교문은 보이질 않았다.
꿈과 낭만이 어려 있던 푸른 잔디밭의 운동장도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질 않았다.
기대했던 70년대의 체취로 숨 쉬고 있어야 할 건물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새로 단장한 두 건물이 자리를 대신하여 손님맞이를 하는 듯했다.
추억을 더듬어보려는 내 발걸음이 안 돼 보였던지 제자 교장이 옮기는 발걸음을 같이 해 주었다. 안내를 받아 발걸음을 옮겨 보아도 보고팠던 그 무엇도 자릴 하고 있지 않았다. 교문통로 입구에 있던 강약국도 없어졌다. 우리 집처럼 정들었던, 어머니 체온으로 느끼고 살았던 그 지붕도 보이질 않았다. 황석영님의 <삼포로 가는 길>을 실감나게 했다
허나 거기엔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학생 때 날 좋아했던 그 마음을 남 주지 못하는 제자 이형구 교장이었다.
인간성 고갈의 시대라 사람 냄새는 고사하고 동물 냄새에 악취까지 풍기고 사는 사람들이 많 은 세상인데 이형구 제자는 사람냄새 물씬 풍기며 살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그것을 발효까지 시켜 하늘도 흐뭇해하는 향내를 풍기며 살고 있었다.
1, 2년도 아니고 20년 30년도 아닌 강산이 네 번 바뀌고서도 남아도는 세월인데도 옛 은사 를 잊지 않고 챙기며 식사라도 한 끼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은 그 자체가 훈장 감이었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은사의 체취를 느껴보려 하는 심성과 인연을 중시하는 그 마음은 아름다움 그 이상의, 세상에서 제일가는 향기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나라고 하는 사람은 사람냄새 풍기는 교편생활 시늉만 내다 졸업을 했는데 이형구 제 자는 내가 못다 걸은, 그 향기로운 길을 걷는 것 같아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은 이런 때 쓰라고 만들어 놓은 단어 같았다.
하늘도 흐뭇해하는 제자의 향기
어찌 천 리 향 만 리 향에 비길 수 있으랴.
그것은 바로 천 리 향 만 리 향으로도 당해낼 수 없는, 하늘도 흐뭇해하는 제자의 향기임에 틀림없었다.
하늘도 흐뭇해하는 제자의 향기, 방부제 처리하여 두고두고 지구촌 방향제로 삼아야겠다.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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