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영 선임연구위원 |
명절이 되면 트램 안부를 물어오는 이가 많다. 잘 되고 있느냐고. 심지어는 죽기 전에 탈 수 있느냐며 힐난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잘 되고 있을걸요?"라고 얼버무린다. 하지만 속내는 한참 복잡하다. 아니, 요즘에는 밑에서부터 뭔가가 올라오는 느낌이다.
몇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대전시는 작년 12월에 기본·실시설계를 4개 컨소시엄에 나눠 발주했다. 단일 노선인 2호선을 4개 컨소시엄 9개 업체가 설계를 하는 것이다. 공사라면 몰라도 설계를 나누는 일은 드물다. 많은 업체를 참여시키는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반감되는 효율과 관리실패에 대한 품질 리스크는 오롯이 발주처 몫이기 때문이다.
설계에 참여하는 업체 대부분 트램 설계 경험이 없다는 점도 문제지만 이 보다 더 큰 문제는 각 컨소시엄을 조정하고 관리할 기술적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점이다. 기술적 품질을 관리할 능력이 된다는 전제하에서 일정 수준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별도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설계 이전에 정리해야 할 문제도 그대로다. 예컨대, 혁신도시 유치로 그 필요성이 커진 대전역, 평균 1.1㎞에 달하는 역간 간격, 역사별 고유한 디자인 적용 등이다. 트램의 도입목적에 비추어 봤을 때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닐뿐 아니라 실시설계 이전에 정리가 되지 않으면 설계는 대기상태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다.
다음으로, 트램차량 문제 역시 중요하다. 대전도시철도 2호선은 노선의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방식만 트램으로 바꾼 것이므로 트램차량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대전시가 발표한 용역결과 '가선+배터리방식'은 여러 가지 면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첫째, 용역내용은 지면급전방식, 슈퍼캡, 배터리방식 등 여러 방식 중 최선의 방식을 선정하는 것인데, 하필 용역기관이 배터리방식 트램을 개발하고 있는 기관이다. 그리고, 최종 방식으로 '가선+배터리방식'을 내놨다. 우연의 일치이길 바랄뿐이다.
둘째, 사실, 배터리방식은 세계적으로 상용화 사례가 가장 적고 운영 길이도 가장 짧다. 또한, 36㎞가 넘는 2호선을 한 번에 운행할 수 없고 테미고개 구배 극복이 안 되는 유일한 시스템이 바로 배터리방식이다. 다른 방식은 그런 문제로부터 자유롭다. 애초 전체 '무가선'에서 '가선+배터리'로 선정한 이유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더구나, 대전시가 도입하려는 방식은 해외에서 검증된 배터리방식도 아니다. 국내에서 현재 연구개발사업으로 개발 중인 차량이다. 용역결과에 대해 고개를 끄떡일 수 없는 이유다.
셋째, 분석내용의 객관성도 이해하기 어렵다. 배터리트램의 무게 69t은 일반 트램보다 20t가량이 더 무겁고 1~2년에 한 번씩 배터리를 교체해야 한다. 배터리는 통상 2천회~2만회 정도 충방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면, 슈퍼캡은 10만회 충방전이 가능해서 교체주기는 통상 10년이며, 지면급전방식은 아예 교체가 필요 없다. 그럼에도 연구진은 슈퍼캡 대비 수명 주기를 1/2로 제시했고, 다른 시스템의 차량 무게는 제시하지 않았다. 모두 운영비와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들이다. 또한, 분석내용에서 지면급전방식의 건설비용이 가선 대비 5배가 높다는 내용이 있으나 근거는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다.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업계에서는 지면급전방식의 건설비용이 배터리트램과 거의 동일하며, 운영비까지 감안하면 오히려 더 경제적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이유로 차량방식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사실, 지면급전이나 슈퍼캡 방식이 갖는 문제는 해외기술이라는 점이다. 같은 값이면 국내기술이 여러모로 좋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의 완성도가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면, 국내기술이라는 이유로 150만 명의 안전을 볼모로 잡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KTX를 도입했던 것처럼 해외 기술의 이전을 전제한다면 빠르게 국내시장을 선점할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한때, 대전시에서 2호선으로 도입을 검토했던 자기부상열차는 지금 인천 영종도에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500번 이상의 결함과 잦은 고장으로 계속 운행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배터리트램 차량이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상용화 이전의 기술이 갖는 리스크를 말하는 거다.
돌이킬 수 없다면 수습이라도 잘 해야 한다. 설계가 막 시작된 지금이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수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추진체계를 다시 정비할 필요가 있다. 현 조직이 모두 다 짊어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도시계획·교통·환경 각 분야 요구사항 중 트램 설계단계에서부터 고려해야 할 내용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설계부터 완공까지 기술적 컨설팅과 관리를 통하여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체계여야 한다.
담당하시는 분들은 최선을 다하고 계시다는 것을 잘 안다. 처음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니 보이지 않는 어려움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펜을 든 이유는 대전시민 모두가 이용할 대중교통수단이 훌륭하게 완성되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양해 부탁한다.
누가 대전 트램을 물어오면, 거리낌 없이 '잘 되고 있어. 걱정마!'라고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대전세종연구원 이재영 선임연구위원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