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자 : 衛(지킬 위, 나라 위), 芒(까끄라기 망), 慈(사랑할 자), 母(어머니 모)
○출 전 : 유향(劉向)의 열녀전(列女傳) 제1편 모의전(母儀傳)
○비 유 : 인자(仁慈)하고 자애(慈愛)로운 어머니 같은 여성을 비유
엊그제 신축년(辛丑年) 설을 보냈다. 코로나19가 고향길을 막은 듯했으나. 그 고향을 향한 마음의 정(情)은 코로나도 결국 막지 못했다. 명절은 우직하고 깊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보다, 언제나 따뜻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정이 그리워 달려가고 싶은 곳이다.
매사가 그렇지만 이 세상에 어머니 품만큼 훈훈하고 따뜻한 곳이 있으랴!
인류의 큰 스승인 공자도 부모의 품에서 철이 들 때까지 3년의 포근한 은혜를 잊지 말라는 뜻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도 3년을 제사로 정성껏 공양하라고 가르친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자식 사랑이 똑 같겠지만 위(衛)나라 어느 계모(繼母)의 자식 사랑을 되새겨 본다.
위망자모(衛芒慈母)란 위(衛)나라 맹양씨(孟陽氏)의 딸로 망묘(芒卯)의 후처(後妻)를 이르는데, 이는 망묘에게 시집와서 세 아들을 낳았고, 이미 전처의 소생(所生)이 5형제가 있었는데 모두가 계모(繼母)인 자모(慈母)를 미워하여 자모는 그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특별히 마음을 썼지만 그들은 오히려 더욱 계모를 미워하여 자모는 자기가 낳은 세 아들에게는 차등(差等)을 두어 전처의 아들들보다 음식과 의복을 한 등급(等級) 낮추어 제공(提供)하고, 일상의 기거동작(起居動作)에도 신경(神經)을 써서 자기 소생의 아들들과 차등을 두었지만 전처의 아들들은 오히려 자모를 더욱 미워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전처의 둘째 아들이 위왕(衛王)의 명(命)을 어겨 죽을 죄를 범했는데 집안에 이 엄청난 일을 당한 자모는 근심과 슬픔으로 몸의 둘레가 한 자나 여윌 정도로 조석으로 아들의 구명운동(救命運動)으로 동분서주(東奔西走)하니 어떤 이가 자모에게 일러 말하길……
"그 사람은 어머니를 계모라고 사랑하지 않음이 매우 심한데 어찌하여 애쓰고 근심함이 이와 같습니까?" 라고 말하니
자모가 말하길……
"만일 그가 내 친자식이라면 비록 그 애가 나를 미워하더라도 나는 자식을 재앙(災殃)에서 구해내고 그에게 미칠 해(害)를 제거할 텐데, 전처의 자식이라 해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어찌 일반세상의 어머니와 다르겠습니까? 그들은 그들의 어머니를 여의었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계모(繼母)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계모 또한 어머니입니다. 남의 어머니가 되어서 자식을 사랑할 수 없다면 자모(慈母)라 말할 수 있습니까? 친자식이라 사랑하고 전처 자식이라 편애(偏愛)한다면 어찌 의(義)라고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대답하였다.
드디어 아들에 대한 재판(裁判)이 열렸는데 위나라 안리왕(安釐王)이 그 소식을 듣고 그 의(義)를 높이 평가(評價)하고 말하길 "이분이야말로 자모(慈母)이다. 그 아들을 용서(容恕)하지 않을 수 없다"하고 그 아들을 사면(赦免)하여 집으로 돌려보냈는데 이로부터 다섯 명의 전처 아들과 자모사이가 친근해져서 그동안 서먹서먹하던 마음이 풀려 하나가 되었고, 자모(慈母)는 예의(禮義)로 질서(秩序)를 가리지 않고 여덟 자식을 거느리고 지도(指導)하였으므로 여덟 아들이 모두 위나라의 높은 벼슬아치가 되어 각각 예의로 인하여 대성(大成)하였다.
이에 군자(君子)가 이르길 "자모(慈母)는 진심(眞心)으로 일관(一貫)하였다"라고 했다.
시경(詩經) 국풍, 조풍, 시구(國風 曹風 ?鳩)에 이르길 '뻐꾸기 뽕나무에 앉았는데 그 새끼 일곱 마리네. 어지신 군자시여 그 거동(擧動)이 한결같으시네. 거동이 한결같으니 마음이 변함없네'라고 하였다.
이는 마음이 균일(均一)함을 이르는 것이고, '뻐꾸기가 한마음으로 일곱 새끼를 기르니 군자는 한결같은 거동으로 만물을 기르고 한 가지 마음으로 백 군주(百 君主)를 섬기며 백 가지 마음으로 한 군주를 섬길 수 없다'라고도 했다.
이어 송(頌)에 이르길 '망묘(芒卯)의 아내는 다섯 아들의 계모로 자혜(慈惠)와 인의(仁義)로 전처의 아들을 양육(養育)했는데 비록 나를 미워하더라도 정성(精誠)껏 사랑함이 친부모(親父母)와 같았으니 계모가 이와 같음은 또한 진실(眞實)로 존경(尊敬)할 만한 일이다'라고 후세까지 오래도록 교훈으로 삼으려고 칭송하여 기리고 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윤리도덕(倫理道德)을 찾아볼 수 없다. 부모에게 효도(孝道)함을 잊은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이제는 세상에 가장 사랑스러운 자식까지 살해하는, 인간이기를 마다하는 짐승만도 못한 젊은이들의 경악할 만한 사건에 잠시 할 말을 잊게 한다. 어쩌다 세상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가!
황금(黃金)이 윤리(倫理)를 몰아냈는가? 나 홀로 정신이 윤리를 막고 있는가? 초등 학교 교과서에 도덕과목(道德科目)이 없어졌으니 이는 위정자들의 책임일 것이다. 비록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못해도 인심(人心)과 정(情)이 넘쳤던 때가 자못 그리운 것은 따뜻한 부모님의 품안에서 사랑과 은혜와 베풂을 배우고 자랐던 때문일 것이다.
위망자모(衛芒慈母)라는 고사성어를 통해 고향을 돌아보며 따뜻하고 인정이 넘치는 어머니 품을 다시 생각해 본다.
장상현/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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