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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원 교수 |
2018년 4월에 중도일보 칼럼 '시사오디세이'에 필자가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대학’이란 제목의 글을 게재한지 3년이 다 되어 간다. 이 글에서 대학은 수익을 창출하지 않는 비영리 사회적 기업으로서 대학 구성원들은 사회적 기업의 주주가 되어 사회적 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진화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요즘 같은 어려움 속에서 이러한 생각이 현실적인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매년 "교육은 무엇인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교육의 의지와 배우고자 하는 이의 동기와 자발적 의지가 함께하고 있는가?" "내가 하는 행동과 이끌고자 하는 힘은 학생들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로 고민하게 된다. 아는 것이 병이라고 했던가. 배워서 남에게 줘야 하는 것이 교육자의 소명이기도 하지만, 안다는 것이 상처가 되기도 하고 치유되기도 한다. 학력저하와 생존의 문제 안에서 내가 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교육적 실험들이 사용되기도 한다.
학생들이 대학에서 지식의 앎을 깨닫고 이를 실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짐으로써 삶의 현장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갖도록 하는 것, 이것은 대학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생존의 가르침, 스스로 터득하도록 유도하는 교육의 본질을 알아감으로써 대학도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꿀벌은 벌통이 더워지지 않게 하고 채집한 꿀의 수분을 날려서 오랫동안 보관하기 위해 자신의 날개를 선풍기처럼 끊임없이 돌린다. 이와 같이, 대학은 생존을 위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행동해야 한다. 대학의 근본과 학생들에게는 제공해야 할 것들을 고민하고 이를 통해 대학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나가야 한다. 칸막이를 버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들을 공유하고 제시할 수 있는 자세만이 지속 가능한 미래가 보장된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어떤 면들이 모두가 놀라는 발전과 결과들을 만들어 냈을까? 언제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며, 자유로움 속에서도 엄격한 시스템을 유지해왔기 때문이 아닐까. 동아시아 역사에 저명한 하버드 ‘오드 아르네 웨스타드’ 교수는 "한국인은 올바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한국은 올바름이 의가 되는 사회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올바름의 근본은 교육의 엄격함으로부터 유래된다. 이러한 근본을 바탕으로 자율과 창조를 추구했던 교육이야말로 세계적인 교육 시스템과 차별되는 한국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생존을 위한 근본적인 물음에 더불어 좋은 교육성과를 내기 위한 자금 문제도 시급하다. 이는 대학 구성원들의 생존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버드대학은 별도의 투자회사를 만들어 주식·헤지펀드 등에 투자하여 연평균 11%의 수익률을 내고 있으며, 서울대도 연 2.5% 정도의 기대 수익률을 목표로 외부에 자금을 위탁하였다. 지방의 대학들도 보수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적극적이며 장기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자금을 운용하여 가장 가치 있거나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분야에 자본과 지식을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할 것이다. 지역 기업들이 대학에 기부금을 최대한 집행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운영 기금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인 기반을 조성하고, 지방의 대학들이 공동으로 자금을 모아 외부위탁운용(OCIO)사에 맡길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해 보인다.
교육의 본질은 앎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어려움과 상처, 그리고 과정의 행복까지 포함된 깨달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교육의 근본이기도 하고 생존의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준원 배재대 바이오의약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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