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
이번 설 연휴에는 코로나 3차 대유행의 기세가 다소 누그러져 혹시 방역수칙이 완화되면 부모 친지들을 만날까 하는 기대가 컸었지요. 그러나 지난달 31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2주간 연장한다는 정부의 불가피한 결정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난립니다. 작년 추석에 이어 고향 가는 길이 또 막혔기 때문이지요. 더구나 이번 설 연휴에는 5인 이상 가족이 모이는 것을 막기 위하여 과태료까지 부과한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릴레이 성묘나 고향을 찾는 대신 여행을 떠나는 설캉스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고 코로나를 핑계로 전국 관광지의 호텔 숙박업소의 예약이 증가하고 있다니 웃고픈 현실입니다.
우리나라의 명절 문화는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차례상이나 음식 준비로 인한 가사노동과 비용, 귀성 귀경길의 교통체증, 가족 간 갈등의 빌미가 되는 명절증후군에도 불구하고, 과거 유교적인 충(忠)의 가치보다도 가부장적 가족질서를 중히 여기는 효(孝)의 가치를 우선하는 우리 민족의 고유 정서가 아직도 자리하고 있지요. 그러나 코로나로 인한 우리 사회의 고통을 생각하면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비대면 문화와 거리두기 등 정부 시책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 일 년간 벼랑 끝으로 몰린 자영업자들의 절규와 생존의 불씨를 살리고자 애쓰는 소상공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골목상권의 생태계는 속수무책 붕괴하여 사람마다 쇳물의 신음을 내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고향 집에서 오순도순 가족들이 모여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나누며 꼬깃꼬깃한 세뱃돈을 받는 재미가 쏠쏠하였던 설날 풍경을 한 번만 더 속는 셈 치고 참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원래 설의 어원은 몸과 마음을 정성스럽게 가다듬어 '삼가하다'의 신일(愼日)이라고 합니다. 또는 처음 가보는 곳 처음 만나는 사람이 낯선 것처럼 '낯선 날'이라고도 하며, '한 해를 보내면서 점점 자신의 늙어가는 처지가 서글퍼 서럽다는', '섧다'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지요. 삼국사기에는 백제 261년 설맞이 행사와 신라 651년 정월 초하룻날 왕이 조원 전에 나와 백관들로부터 축하를 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세시풍속의 하나로 새해가 되었을 때 서로 만나 해가 바뀌는 인사를 주고받는데 생자(生子), 득관(得官), 치부(致富) 등 상대방이 반가워할 말을 들려주는 것을 덕담이라고 하는데 언령관념(言靈觀念)의 덕담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세배할 때 아랫사람은 겸손하게 조용히 절만 하고 어른이 덕담을 건넨 후 답례를 해야 하는데 요즈음은 세배할 때 거꾸로 아랫사람이 먼저 하는 경향이 허다하지요. 또한, 연세가 많거나 노환으로 건강하지 못한 어른들께 '만수무강하세요' 하거나 윗사람 역시 '취직해야지, 장가가야지'하는 덕담이 결례된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최남선(1890~1957)은 '이제 그렇게 되라'고 축원하는 것이 아니라 '벌써 그렇게 되셨다니 고맙습니다'라고 단정해서 경하하는 것이 덕담의 특색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덕(德)이란 본래 인간의 삶에 나타나는 모든 종류의 바람직한 인격과 그 인격의 발현을 말하는 것으로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마음은 본래 덕이 없고 오직 곧은 성품이 있을 뿐이다. 나의 곧은 마음을 실천하는 것을 일러 덕이라 한다, 선을 행한 뒤에야 덕이라는 이름이 생겨나는 것이니'라고 하였지요.
그렇습니다. 일 년이 넘도록 코로나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고향에서 쓸쓸하게 기다리실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지만, 이번 설에도 고향을 찾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부모님에게 어떻게 전하시렵니까. 그러나 먼저 부모님께서 대처에 나가 있는 자식들에게 '이번 설 명절에는 오지 않아도 된다'라는 전화 한 통을 주신다면 그것이 윗사람으로서 덕을 실천하는 길이며 올 설날 최고의 덕담이 아닐는지요?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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