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02세를 맞은 김형석 명예교수(연세대 철학과)의 말이다. 휴일 아침 스마트폰으로 이런 저런 뉴스를 들추다 우연히 읽게 된 기사 속에는 뿔테 안경을 쓰고, 모진 세월의 풍파를 이겨낸 듯 다부져 보이는 노인이 있었다.
김형석 옹은 아무리 행복해지고 싶어도 행복해지기 어려운 두 부류에 대해 말한다. 첫 번째는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 두 번째는 이기주의자를 꼽았다.
정신적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많은 재산이나 명예, 권력을 갖게 되더라도 만족을 몰라 오히려 불행의 늪에 빠진다고 말한다.
또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자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선한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인격을 갖추기 어렵고, 인격의 크기라 할 수 있는 자기 그릇에 담길 수 있는 행복도 작을 수 밖에 없다고 전한다. 공공의 이익보다 개인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요즘, 나를 위해 남을 해하는 흉흉한 사건사고들을 보며 '이기주의와 행복은 공존할 수 없다'는 김 교수의 의견에 일견 수긍이 가기도 한다.
보편적이면서도 묵직한 통찰이 담긴 그의 '행복론'이 유난히 가슴에 꽂힌 이유는 아마도 내가 올해 30대의 마지막 해를 맞이했기 때문이리라. 30대의 아홉수는 20대의 아홉수보다 더 무겁게 다가온다. 어려서는 상상조차 못한 나이 '불혹'을 앞둔 나로서는 올해를 어영부영 보내서는 안 될 것 같은 약간의 의무감마저 든다.
나이에 걸맞은 'To do list'의 압박감과 피부 깊숙이 파고든 세월의 두려움을 뒤로한 채 보게 된 영화 '소울'도 행복이라는 명제를 다뤘다.
주인공 조 가드너는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음악적 꿈을 좇지만, 결국 행복은 매순간 소소한 일상 속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는 인생에 거창한 목적이 없어도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간다는 그 자체로 충분히 소중하고 빛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하늘을 보거나 걷는 건 목적이 아니야. 그냥 사는 거지." 자신의 불꽃을 간절히 찾고 싶어 하는 영혼에게 조는 말한다.
다가오는 설 명절, 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빈약한 주머니 사정이 처량하더라도 너무 낙심하지 말자. 내가 노력해도 달라질 수 없는 현실이라면 지금 내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들을 감사하며 묵묵히 내 길을 가자. 혹시 모르지 않는가. 인생의 불꽃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촛불이라도 발견할지….
인생의 반환점을 앞둔 나에게 100년의 통찰력을 가진 김형석 옹도, 영화 '소울'의 조도 "괜찮아. 너는 너답게 사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은지 편집2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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