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 한 겨울날 아름이의 꿈속에서 수학을 공부하다

  • 오피니언
  • 교단만필

[교단만필] 한 겨울날 아름이의 꿈속에서 수학을 공부하다

'이야기가 있는 수학교실'을 운영하면서

  • 승인 2021-02-05 10:16
  • 수정 2021-06-24 13:55
  • 신문게재 2021-02-05 18면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해밀초 전유진
/전유진 해밀초 교사
해밀초등학교는 2020년 9월에 개교해 전교생이 전학생이다. 이전 학교에서 어디까지 배웠는지, 원격학습 기간에 어떻게 공부했는지 궁금하여 학생들의 수학익힘책을 슥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희한한 현상을 목격했다. 5학년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단원은 보통 정해져 있는데, 이번 학생들은 많이 틀리는 단원이 조금씩 달랐다. 알아보니 원격학습으로 공부한 부분이었다. 전국에서 온 학생들이라 원격학습 단원이 서로 달랐던 것이다.

마침 교육청에서 '이야기가 있는 수학교실' 사업을 진행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방학 동안 학생들이 수학 학습 결손을 메우고 학습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키울 수 있도록 수학 캠프를 신나게 열어보자는 것이다. 나는 흔쾌히 지원했다.

"방학 때 수학교실에 올 사람? 이야기랑 놀이 위주로 운영할 거야. 방탈출도 섞어서."

방탈출? 학생들이 눈을 번쩍이며 시선과 의견을 빠르게 주고받았다. 한 명이 "저요!"라고 외치자, 여기저기에서 저요, 저요, 소리가 들려왔다. 당시 열여섯 명이었는데 열한 명이 신청했다. 방역 때문에 놀이에 굶주려하던 학생들에게 공식적인 놀이터를 제공해준 셈이다. 동 학년 선생님들과 수학교실 운영 연수 교재를 참고하여 수학 놀이터를 꾸미기 시작했다.



대망의 첫날, 몇몇 학생들이 투덜댔다. 방학에 아침 일찍 수학 공부하러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럴 줄 알고 '지옥에서 온 분수의 곱셈 이야기'를 준비했다. 이 이야기는 우리 반 학생 중 아름이의 꿈속에서 있었던 일로 시작한다. 세 교실에 숨겨진 문제 쪽지를 찾아 풀면서 좀비가 된 학생들은 인간 학생들을 감염시키고, 인간 학생들은 살아남아야 한다. 한바탕 수학 추격전을 마치면 아름이는 꿈에서 깰지 말지 정해야 하는데, "잠자는 게 좋다"며 꿈에서 깨지 않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아름이의 꿈속에서 계속 수학 공부를 하게 되었다.

첫날이 나쁘지 않았는지 다음 날부터는 투덜거리며 등교하는 학생들이 없었다. 간단히 복습한 뒤에 소수의 곱셈 할리갈리 게임을 토너먼트 전으로 진행했다. 수학적 약자를 부전승 자리로 배려하고 대진표를 뽑았다. 소수점 옮기는 원리를 헷갈려 했던 약자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고 경기를 헤쳐나가더니 우승을 해버렸다. 말도 안 되는 결과에 어떤 이는 활짝 웃고, 어떤 이는 깜짝 놀라고, 또 어떤 이는 원통해 하며 다음 기회를 도모했다.

나흘째 되는 날에는 분수의 크기를 양으로 표현해보는 활동을 했다. 분수 감각을 채워주고 싶었다. 수학교실 마지막 날에 학생들에게 가장 재미있었던 활동과 가장 필요했던 활동을 하나씩 꼽아달라고 했는데, 이날 했던 활동이 가장 필요했던 활동으로 뽑혔다. 어쩐지 활동 몰입도가 평소와 달랐다.

가장 재미있었던 활동으로는 수학 방탈출이 나왔다. 두세 명이 한 팀이 되어 수학 문제를 풀었는데 몇몇 팀은 계산 실수가 발생하여 검산만 몇 번씩 하는 바람에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 결국 방탈출에 성공하긴 했지만 진이 빠져서 집에 갔다. 좌절감을 안겨 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런데 그 학생들도 가장 재미있었던 활동으로 방탈출을 꼽았다. 게임의 결과를 떠나 과정이 재밌었다면 또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말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7일간 9시부터 11시 40분까지 학생들은 규칙적으로 학습 결손을 채워나갔다. 짧은 기간이지만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수학 학습에 대한 흥미도가 올라오는 과정을 눈으로 본 듯했다. 학생들은 수학 학습에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거나 도와주고, 풀이과정을 꼼꼼히 검토하고, 놀이 자체를 즐기고, 약자를 배려하는 태도를 익혔다. 앞으로 수학을 대할 때 이번 수학교실을 떠올리며 더 자신감을 갖고 학습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이의 꿈속은 정말 멋졌다.

/전유진 해밀초 교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