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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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배기원 대흥영화사 감독

  • 승인 2021-02-03 15:33
  • 신문게재 2021-02-04 19면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배감독 고화질2
배기원 대흥영화사 감독
1895년 12월 28일 밤 9시가 되자 프랑스 파리에 있는 그랑 카페의 지하실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라 시오타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라는 제목의 영화가 최초로 상영되는 역사적 순간을 서른세 명의 관객이 숨죽이며 맞이하고 있었다. 라 시오타 역 플랫폼의 모습이 커다란 스크린에 사진으로 올려진 순간 사람들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사진이야 이미 익숙해져 있는 상황이어서 별로 새롭지 않았다. 하지만 사진 속 사람들이 움직이고 기차가 멀리서부터 객석 바로 앞까지 달려오자 사람들은 놀라기 시작했다.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가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지만 최초의 관객들이 본 영화는 놀라움 그 자체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또한 생전 처음 겪어보는 팬데믹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것만 같았던 시작과 달리 1년이 넘도록 전 세계를 휩쓸며 연일 뉴스로 보도되고 있다. 익숙해지고 잠잠해질 것 같다가 또다시 집단감염이 발생하면서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자연을 무책임하게 훼손하는 인간에 대한 경고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바이러스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쨌거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최초의 관객을 맞이했던 영화도 흥미를 끌며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듯이 영화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며 미처 깨닫지 못했거나 알고 있던 내용을 재구성하여 감동을 자아내기도 한다.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을 것만 같았던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하며 흥미를 더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세상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특히나 이번 설 연휴에는 고향 땅을 밟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이다. 떨어져 사는 가족들도 함께 모이지 못하게 하는 이러한 상황을 우리는 예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영화는 예상할 수 없는 결말이 있을 때 흥미로워진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다르다. 모두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어려운 시기에 힘겨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술은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때론 누군가의 파란만장한 삶이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하며 때론 숨겨져 있던 문제 제기를 통해서 사회적 이슈를 담아내기도 한다.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놓기도 하는 것이 영화의 힘이자 영화의 매력이기도 하다. 비록 극장의 관객은 확연히 줄었지만, 영화가 주는 감동과 매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집에서 영화를 보는 일이 많아졌을 것이다. 이 힘든 시기를 함께 이겨내기에 영화는 제격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또한 힘겨움을 겪고 있다. 제작은 물론 개봉이 힘들어진 영화계는 난항을 겪고 있다. 당연히 투자도 얼어붙어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예술가들은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시도해 보지만, 여전히 개인적으로 감당하기엔 벅찬 상황이다.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하는 공생이 필요한 시기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 정책이 펼쳐져야 한다. 예술은 부유할 때만 누리는 사치품이 아니라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필수품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어제는 길을 걷다가 목련의 몽우리를 보았다. 모든 것이 얼어붙은 차가운 겨울 속에서도 봄을 준비하는 그 모습이 너무도 반갑고 예쁘게 느껴졌다. 이제 곧 봄은 올 것이다. 아직은 하얀 입김이 가득한 계절이지만 이제 곧 하얀 목련이 피어오를 그 날을 기다려본다.

/배기원 대흥영화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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