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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꼬는 알제리 출신이다. 스페인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알제리는 오랫동안 프랑스 식민지배에 있었다. 우리가 일제강점기 겪었던 고통과 치욕을 생각한다면 알제리도 충분히 미뤄 짐작할 수 있다. 1954년 드디어 알제리는 프랑스에 저항했고 프랑스는 군대를 파견했다. 이름하여 알제리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알제리인들은 민족해방전선을 기치로 내걸고 독립투쟁을 했다. 이 전쟁으로 1962년 마침내 알제리는 독립을 쟁취한다. 이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는 알제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침묵. 이 전쟁을 언급하는 것이 금기였다.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그 결과로 프랑스는 알제리인에 대한 차별과 배제가 극심했다. 심지어 유러피안인데도 알제리에서 태어나 살았다는 앙리꼬도 프랑스에서 수모를 겪었다. 그래서 탄생한 노래가 '녹슨 총'이다.
얼마 전 영화 '사마에게'를 봤다. 이 영화는 시리아 내전이 배경이다. 시리아 내전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전쟁이다. 독재자 알아사드의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서 시작된 내전은 복합적인 양상을 띤다. 종교적 갈등과 미국과 소련의 개입으로 치달아 국제전으로 비화됐다. 영화는 한 여인이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형식이다. 카메라를 들고 폭격을 당해 아수라장이 된 도시와 선혈이 낭자한 병원 응급실을 숨가쁘게 찍는다. 병원은 의사인 남편이 근무하는 곳이다. 하루하루 전쟁의 공포 속에서 여인은 딸 사마에게 권력자의 만행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뽀얀 포연 속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안기며 미소를 잃지 않는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정부군의 공격으로 결국 사마 가족은 삶의 터전을 떠난다. 정든 집과 곧 피어날 뜰 안의 장미나무를 버려둔 채 말이다.
선한 전쟁은 없다. 목적이 정당하다 해도 전쟁은 피를 보기 때문에 정의롭지 못하다. 무고한 민간인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우리도 전쟁을 치렀다. 무려 3년동안 말이다. 전쟁의 후유증은 심각하고 오래간다. 한 인간의 인생 전부를 지배한다. 이명박이 대통령 당시 "나는 전쟁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무지하고 오만한 권력자의 전형을 보여줬다. 어떤 전쟁도 일어나선 안된다. 전세계인은 걸프전을 안방에서 티비로 생생하게 시청했다. 미국은 전쟁을 쇼 중계하듯 보여줬다. 시청률을 염두에 두고 현장중계한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사디즘과 다를 바 없다. 노래 주제가 묵직해서 한껏 긴장했다. 오랜만에 메시지가 있는 노래를 들었다. 나는 평화를 사랑한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몇몇만 빼놓고. '저는 학자를 보았어요. 저는 사도를 보았어요.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는데 그들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을요. 저는 목숨을 바친 한 여인의 외침을 들으면서 기뻐서 눈물을 흘렸어요. 정원에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있어요. 그 꽃들은 아침이슬을 받아 핀답니다. 또한 거리에는 아가씨가 자기의 첫 사랑의 약속을 위해 달려가네요.' 한가롭게 떠가는 하늘의 흰구름이 소중한 하루다.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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