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린아 변호사 |
'하루 밤새 대전·세종 금은방 3곳 턴 20대 구속'이라는 제목으로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된 사건이었다. 범인은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청년 둘이었는데, 청년들은 생활고로 인해 돈 벌 방법을 찾다가 SNS에서 범행방법을 배웠다고 했다. 청년들의 혐의는 너무나 명백했고 청년들이 몇 시간 사이에 훔친 귀금속은 1억 원에 상당하는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청년들은 구속됐다.
이 사건을 맡게 되고 나는 깜짝 놀랐다. 범행 대상이 된 금은방 중 한 군데가 필자가 잘 알고 지내는 분이 운영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사건을 맡게 되기 며칠 전 그분을 만났을 때 '세상에 이런 일이 있었다'며 함께 언론에 보도된 범행장면을 보고 혀를 내두른 터였다.
국선 피고인들 열에 일고여덟은 가족들이 없거나, 가족이 있더라도 여건상 피고인을 경제적, 정서적으로 지원할 수 없는 경우인데, 이 사건은 피고인들이 아직 어린 청년이었고 범죄전력이 없는 초범이었기에 다행히 가족들과 지인들이 피고인들에게 관심을 가져줬다.
가족들과 지인들은 피고인들이 평소 착하고 바른 심성을 가졌었다며, 극도의 경제적 곤궁 속에 한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너무나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면서 재판부에 피고인들의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고, 변호인인 나에게도 가끔은 귀찮을 정도로 전화하기도 하고, 거주지가 먼 곳인데도 거의 매주 나를 찾아오는 등 적극적으로 조력을 구했다.
피고인들에 대한 가족과 지인들의 정성과 노력을 보면서, 나는 점점 "다음에는 결코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피고인들의 약속을 믿고 싶어졌고 무엇을 더 도와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됐다.
그러던 중 지인이 운영하는 금은방이 떠올랐는데, 다행히 그곳은 외부 유리만 깨졌을 뿐 범행이 미수에 그쳤기에 염치불구하고 지인에게 연락해 피고인들의 딱한 사정과 가족, 지인들이 피고인들에 대해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피고인들이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합의를 부탁했다. 사장님께서는 흔쾌히 아무런 조건 없이 합의를 해주셨다. 아직 어린 피고인들이 사회의 온기를 느끼고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렇게 피해업체 4곳 중 한 군데와 처음으로 합의한 후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업체들과 합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두 군데는 미수, 두 군데는 기수였는데 기수 업체 두 곳은 피해 금액이 수천만 원씩에 상당했기에 피고인들의 양형을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금전적 보상은 필수적이었다.
극도의 경제적 곤궁 때문에 범행에 이르게 되었던 피고인들이기에, 부모님들이 당장 마련할 수 있는 돈은 피해 금액의 1/5에도 못 미쳤다. 궁여지책으로 일시금으로 얼마를 드리고, 수 개월간 나머지를 분할해 총피해금액의 1/3 정도를 변제하는 방안을 떠올렸다.
가장 피해가 컸던 금은방 사장님께 조심스럽게 전화를 드려 국선변호인이라고 소개하자 사장님께서는 "자식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금전적인 보상 여부보다도 피고인들이 사회로 나와 또 이런 잘못을 저지를까 걱정이 되어 합의를 해주는 데에 고민이 많다"고 했다. 여러 번의 전화통화 끝에 피고인들의 가족들과 지인들이 이렇게 큰 관심과 애정이 있으니 아마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내 믿음을 사장님께도 전할 수 있었다.
합의금으로 준비된 금액은 합의를 부탁하기에도 죄송한 금액이었고 분할 변제하기로 한 약속은 아직까지 그저 서류 한 장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사장님께서는 '자식 키우는 부모 마음으로' 합의를 했다.
그렇게 한 군데씩 합의하자 나머지 업체들 역시 "다른 업체가 그런 뜻으로 합의를 해주었다면 나도 해주겠다"며 흔쾌히 실제 피해액에 턱없이 못 미치는 피해 보상을 받고도 합의에 응했고, 피고인들은 피해업체 모두로부터 범행을 용서받을 수 있었다. 선한 마음이 불러오는 선순환이었다.
몇 주 후 피고인들은 1심 판결을 선고받게 된다. 아마도 피해자 전원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 참작될 것이다. 피고인들이 언제 사회로 돌아오게 될지 정확히는 알 수는 없지만, 피고인들이 자신들의 큰 잘못에도 한 번 더 믿어주고 지원해준 가족들의 애정을, '아직 어린 피고인들을 자식처럼 여겨' 선처를 베풀어 준 피해자들의 따뜻한 마음을 잊지 않고 바르게 잘 살기를, 나아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최린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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