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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학 교수 |
지난해 이맘쯤 필자도 나름의 기도 제목을 소망에 담아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증유의 코로나 사태가 터질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 이후의 일들은 굳이 많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이었다. 꿈을 이루려고 애쓴 해가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하여 처절하게 몸부림쳐온 한 해이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버티기만 한다면, 살아날 수 있으리라는 절박감 이외에는 그 무엇하나 생각할 틈이 없었다.
그래서 연초에 그려본 꿈이 무엇이었는지, 그 꿈은 어떻게 되었는지도 뒤돌아보지 못한 채 엉겁결에 신축년 새해를 맞았다. 혼란과 불안으로 표현되는 2020년의 코로나 시대를 정리하지도 못하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계획도 세우지 못한 채 2021년을 그렇게 시작하였다.
지난해를 마무리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힘들다'였다. 해가 바뀐다고 하여 이 힘듦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새해가 밝았다고 하여 가벼워지는 것도 결코 아니리라.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고통의 무게는 더욱 가중되어 우리네 삶의 현장 속으로 치고 들어오는 법이리라. 그렇기에 올 한 해가 지난해보다 더 좋으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실은 더욱 나빠질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리라.
이런 현실 속에서 과연 우리는 또 새해 꿈을 꾸어도 좋은 것일까? 2021년을 맞이 한 우리에게 새해 소망은 사치이고, 어쩌면 무모하기까지 한 것은 아닌지 회의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한 심리학자는 힘든 해를 보낸 때에는 새해 소망을 하는 것이 오히려 역효과만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필자의 지난 과거를 돌아보아도 새해 꿈이 이루어진 것은 기억에 없고, 실패하였던 기억만이 남아 있는데, 코로나로 인한 고통의 터널이 언제 끝날지, 아니 과연 끝나기는 할 것인지 그 누구도 모르는 이 시점에, 새해 꿈을 꾼다는 것은 사치이자 무모함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잡다한 생각 잠시 뒤로 물리고 정월 찬 새벽 기운에 기대어 생각해보자. 유한한 존재인 우리는 내일을 모른다. 어떤 폭풍우가 닥쳐오고, 어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지 가늠조차 못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역설적으로 우리는 새해 소망을 걸어두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내일 일이 확실하다면 무슨 소망이나 계획이 필요할까? 내일을 모르기에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똬리를 틀고 언제든 분출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는 '불안'을 이기고자 완전한 존재에게 간절히 빌어도 보고, 절대자 앞에 기도 제목을 세워 새벽마다 두 손을 모으는 것은 아닐까? 새해 결심을 하는 풍습이 그 옛날 저 멀리 바빌로니아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리라.
이전 것은 이미 지나갔다. 과거는 더 이상 우리 곁에 있지 않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오직 오늘과 내일만이 존재할 뿐이다. 과거는 단지 오늘과 내일의 진보를 위한 자양분으로만 기능한다. 지난해의 힘듦이 오늘의 행복을 이루는 원천임을 생각하자. 감사한 일은 지난해를 돌아보면서 우리의 부족했음을 인정하고 새해를 맞이하며 좀 더 나은 우리를 꿈꾸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어제를 딛고 내일로 진보할 수 있는 것이다. 2021년에도 새해 꿈은 결코 무모함도 사치도 아니다. 그것이 설령 이루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신이 주신 선물이다. 이 절망의 시대에 우리 모두 희망을 이야기하자. 내일이 지금보다는 좋으리라는 값진 희망을.
/손종학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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