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스푸트니크 순간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스푸트니크 순간

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 승인 2021-01-21 11:05
  • 신문게재 2021-01-22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new
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1957년 미국과 냉전으로 대립하던 소련은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당시엔 소련이 이미 수소폭탄 실증에 성공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인공위성을 띄울 수 있다는 것은 소련이 언제든지 미국 전역을 수소폭탄으로 폭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했음을 뜻했다. '스푸트니크 쇼크' 또는 '스푸트니크 충격'은 이때 미국 정부와 국민이 느꼈던 놀라움과 공포를 뜻한다. 미국은 부랴부랴 과학기술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소련을 따라잡기 위해 열을 올렸고, 1969년 최초로 인간을 달에 보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겨우 상처 난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었다. 달 탐사 이후 우주왕복선이 몇 차례 폭발하는 등 굴곡을 겪기도 했으나 현재 미국이 우주 개발을 선도하는 나라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결국 스푸트니크 쇼크는 미국이 가진 저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계기가 됐다.

2020년 한 해는 코로나바이러스로 과학 뉴스가 도배됐지만, 그 와중에도 필자에게 작은 충격을 안겨준 뉴스가 있었다. 중동의 작은 나라 UAE가 제작한 관측위성이 지난 7월 일본 로켓에 실려 화성으로 향했다는 소식이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달에도 가지 못했는데, 그보다 훨씬 어렵다는 화성에? 불과 10여 년 전에 우리나라 기업 쎄트렉아이에서 이 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을 만들었던 사실을 기억하는 필자는 깜짝 놀랐다. 확인해보니 위성 제조는 미국의 도움을 받았고 발사에는 일본 로켓을 사용했다. 그러나 UAE의 행보에는 다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으로부터 원자력발전소를 도입한 것도, 중동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을 구축한 것도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 과학기술에 바탕을 둔 지식기반 경제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한국과 미국에서 훈련받은 20~30대의 젊은 과학자들이 우주 개발의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총리가 우주 개발은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을 보니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기후 변화에서 중국의 기술적 위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스푸트니크 순간(moment)'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했다. 스푸트니크와 비슷한 깜짝 놀랄만한 외부 충격에 대응해서 국가와 사회가 온 힘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란 뜻이다. 오바마는 이럴 때일수록 교육과 과학기술에 예산을 써야 한다고 주장을 하면서 한국을 좋은 사례로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고 보면 UAE에서 추구하는 지식기반 경제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입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후진국에서 시작해 선진국 대열에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까지 이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각고의 고생을 하며 이 땅에 과학기술의 씨를 뿌린 선배 과학자들의 노고 덕분이다.

그러나 2020년의 우리나라가 UAE처럼 담대한 도전을 하고 있는지 물으면 곧바로 긍정하기 어렵다. '성공'으로만 보고되는 연구개발사업의 이면에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소극적인 문화가 똬리를 틀고 있지 않은지 걱정스럽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팬데믹 상황에서도 역동적인 움직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구경 500m의 세계 최대 전파망원경을 설치하여 제2의 지구를 찾고 있는 중국, 중성자와 방사광 연구시설에 과감하게 투자해 전기차용 전고체전지 개발에 성큼 앞서나가는 일본, UAE보다 먼저 화성에 관측위성을 띄운 인도 등.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과학기술 발전을 통한 국력의 신장을 도모하고 있는 이상 우리나라가 가진 기술적 우위를 과신하기엔 이를 것이다. 아무쪼록 UAE가 쏘아 올린 화성 관측위성이 우리나라에 스푸트니크 순간으로 작동해 지금까지의 성공에 취하지 않고 더 담대한 도전에 나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3.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