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
2020년 한 해는 코로나바이러스로 과학 뉴스가 도배됐지만, 그 와중에도 필자에게 작은 충격을 안겨준 뉴스가 있었다. 중동의 작은 나라 UAE가 제작한 관측위성이 지난 7월 일본 로켓에 실려 화성으로 향했다는 소식이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달에도 가지 못했는데, 그보다 훨씬 어렵다는 화성에? 불과 10여 년 전에 우리나라 기업 쎄트렉아이에서 이 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을 만들었던 사실을 기억하는 필자는 깜짝 놀랐다. 확인해보니 위성 제조는 미국의 도움을 받았고 발사에는 일본 로켓을 사용했다. 그러나 UAE의 행보에는 다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으로부터 원자력발전소를 도입한 것도, 중동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을 구축한 것도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 과학기술에 바탕을 둔 지식기반 경제를 만들어가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한국과 미국에서 훈련받은 20~30대의 젊은 과학자들이 우주 개발의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총리가 우주 개발은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을 보니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기후 변화에서 중국의 기술적 위협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스푸트니크 순간(moment)'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했다. 스푸트니크와 비슷한 깜짝 놀랄만한 외부 충격에 대응해서 국가와 사회가 온 힘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란 뜻이다. 오바마는 이럴 때일수록 교육과 과학기술에 예산을 써야 한다고 주장을 하면서 한국을 좋은 사례로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고 보면 UAE에서 추구하는 지식기반 경제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입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후진국에서 시작해 선진국 대열에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까지 이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각고의 고생을 하며 이 땅에 과학기술의 씨를 뿌린 선배 과학자들의 노고 덕분이다.
그러나 2020년의 우리나라가 UAE처럼 담대한 도전을 하고 있는지 물으면 곧바로 긍정하기 어렵다. '성공'으로만 보고되는 연구개발사업의 이면에는 실패를 두려워하는 소극적인 문화가 똬리를 틀고 있지 않은지 걱정스럽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팬데믹 상황에서도 역동적인 움직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구경 500m의 세계 최대 전파망원경을 설치하여 제2의 지구를 찾고 있는 중국, 중성자와 방사광 연구시설에 과감하게 투자해 전기차용 전고체전지 개발에 성큼 앞서나가는 일본, UAE보다 먼저 화성에 관측위성을 띄운 인도 등. 이렇게 세계 곳곳에서 과학기술 발전을 통한 국력의 신장을 도모하고 있는 이상 우리나라가 가진 기술적 우위를 과신하기엔 이를 것이다. 아무쪼록 UAE가 쏘아 올린 화성 관측위성이 우리나라에 스푸트니크 순간으로 작동해 지금까지의 성공에 취하지 않고 더 담대한 도전에 나서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박승일 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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