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뿌리공원 효 문화 축제가 있는 수변 무대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9월 23일 토요일은 나로선 엄청나게 바쁜 하루였다.
오전 10시에는 관평동 성당에서 고등학교 동기 세례식이 있어 축하차 거기에 갔다. 친구가 준비한 점심식사 마치자마자 부랴부랴 오후 3시 예식을 보러 원신흥동 예식장으로 향했다. 혼주인 대학동기한테 인사만 하고 바로 뿌리공원으로 발길을 재촉해야만 했다. 4시 문학축제 김용복 형님이 연출하는 희곡 공연 축하를 위해서였다.
정말 숨 가쁘게 바쁜 하루가, 유명 인기연예인이나 유명 탤런트로 뛰는 기분이었다.
시간 대느라 숨을 몰아쉬며 부리공원에 도착했을 때 수변 무대 주변에는 많은 인파로 북적대고 있었다. 내 주변 객석에는 많은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아는 사람도 있었지만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공연 시작 전 저마다의 얘기에다가, 세상사는 이런 저런 얘기들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나도 그들의 얘기에 관심을 둔 것은 아니었지만 말상대가 없어 그냥 옆에서 듣고만 있었다.
순간 옆 사람의 여과 없이 하는 이야기가 마냥 귀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 사람 말뿐인 사람이야."
듣다보니 마침 화제의 주인공이 나도 알 만한 사람이어서 자초지종 다 들어 보았다.
"그 사림 말뿐이지 약속이란 걸 지킬 줄 모르는 사람이야."
성토 대회장에서 맞장구치다 온 사람처럼 불쑥 한 마디 하는 얘기가,
"언제 한 번 저녁이나 같이 해요. 언제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언제 한 번 만납시다. 언제 한 번 모시겠습니다.
언제 한 번 차나 한 잔 하시지요.
해놓고 한 번도 약속을 지키는 법이 없어.
정말 입으로만 사는 사람이야 "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그런 말을 자주하고 살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말을 해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아야 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언제 한 번 ' 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언제 한 번 '이란 말이 공약(空約)으로 남발되어 쓰이는 우리 언어현실임에 틀림없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는 자신의 언어생활을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 하겠다.
나는 오늘 대인관계에서 그런 말을 몇 번이나 하면서 사람을 만났는지 점검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작별 인사를 하면서, 전화를 끊으면서, 악수를 하면서 ; 친구에게, 직장 동료에게, 거래처 파트너에게, 선생님께. 웃어른께. 부모님께, 내가 상대하는 모든 사람에게,
"언제 한 번 저녁이나 같이 해요. 언제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언제 한 번 만나 차나 한 잔 같이 해요. 언제 한 번 모시겠습니다."
묵시적인 약속을 해 놓고, 이런 약속 지켜보신 적 있으십니까?
말만 해놓고 지키지 못하는 약속이라면, 공약(空約)이 되고 마는 것이니 당연히 '그 사람 말뿐이야'라는 성토 아닌 성토의 대상이 되어 구설수에 오르내린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언제 한번'이란 추상적인 시간은 오지 않는다. 진심이 담긴 인사라면 이런 말은 쓰지 말아야겠다.
진정 마음으로 식사 한 끼라도 같이하고 싶고, 차 한 잔이라도 함께하고 싶다면 구체성을 띠는 말로 '내일 저녁 약속'이 괜찮은지, '다음 주말 시간'을 낼 수 있는지, 그 여부를 물어 약속 시간을 잡아야 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의식하지 못하는 중에 지키지 못할 약속의 남발로 신뢰를 잃는 경우가 많다. 신용도가 떨어져 구설수에 오르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 되겠다.
'그 사람 말뿐이야.'
언행일치가 되지 않아 속물근성으로 사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
"언제 한 번 저녁이나 같이 해요."
이 한 마디가 공약(空約)이 되어 짠 맛을 잃은 소금은 되지 말아야겠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소금 구실을 못하듯
사람도 신뢰를 잃으면 사람 구실을 못한다.
'그 사람 말뿐이야.'
남의 얘기로만 들어서는 아니 되겠다.
남상선 / 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조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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