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각 대전건축사회장. |
나라와 지역에 따라 주어진 여건이 달라 똑같은 개발 논리나 비전을 가질 수는 없으나, 방향성을 결정하고 실천하는 방식은 정말 새롭고 배우고 싶은 것이었다. 로테르담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의 폭격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잿더미가 된 도시를 다시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이때 로테르담은 '복구'와 '재건'이 아닌 '창조'를 도시 계획의 철학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래서 건축과 영감의 도시로 네덜란드의 두 번째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시민들이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공간감을 가진 건축물들이 일상생활 속에 자리를 잡으면서 동네와 도시, 한 지역의 역사로서의 존재로 남아 있게 되고 도시의 정체성을 대표하게 됐다.
우리나라의 5일장처럼 노상 판매하던 전통시장을 커다란 말발굽 모양의 건축물을 만들어 가운데 비워진 공간은 전통시장으로, 테두리의 말발굽 부분에는 주거와 사무실로 구성한 '주상복합 전통시장'인 마켓홀은 시민들의 생활 터전이자, 도시의 관광요소로서 로테르담의 랜드마크처럼 인식되는 곳이 되었다. 아치형의 독특한 건축물과 천장을 가득 채운 그림이 있는 마켓홀은 전 세계에서 전통시장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쇠퇴일로에 있는 대전의 전통시장이 관심 있게 바라볼 필요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장대지구의 유성시장 입체화가 거론되는 시점에 눈여겨 보았으면 한다.
로테르담의 젖줄인 마스강을 가로지르는 에라스무스 다리는 세련된 현수교의 자태를 가지는 동시에 정해진 시간마다 선박의 통행을 위해 다리를 들어 올리는 진풍경을 관광객에게 선사해 준다. 그 주변의 다양한 건축물들은 마치 전시장에 와 있는 기분이 들 정도로 각각의 개성을 뽐내고 있다. 건축사의 창의성을 유도하고 표현할 수 있는 정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는 규제 일변도의 정책안에서는 창의성의 발현이 매우 어렵고 기본적인 수익성에 급급한 비슷한 형상의 건축물만 양산되기 때문에 사업성과 공공성을 모두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시민의 절반이 이민자라는 로테르담은 다양한 시민의 구성처럼 다양성을 수용하는 포용성이 가득한 창의적인 도시로 거듭나면서 지속 가능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고 미래 도시를 보여주는 선구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는 우리나라가 데드크로스현상이 나타나며 인구 감소가 더 많아졌고 대전은 인구 유출이 지속됐던 위기의 해였다. 오랫동안 침체되고 쇠퇴했던 원도심을 필두로 재개발과 재건축 붐이 일고 있는 시점에 대전이 지향해야 할 도시의 미래상은 무엇일까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역세권개발에 69층 주상복합건축물이 들어설 수 있듯이 민간건축물도 주어진 법테두리와 공공성의 확보라는 전제 안에서 자율적인 층수와 형태를 만들 수 있는 자율성과 창의성을 배려했으면 한다. '숙의 민주주의'와 '민관거버넌스'라는 대전시의 시정 방향성을 풍성하게 담은 도시와 건축의 비전이 담긴 정책을 맞이하며 크게 환호하고 싶은 마음은 비단 건축인의 한사람인 필자뿐만이 아닌 노잼도시에서의 탈출을 원하는 많은 시민들의 마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 주길 바랄 뿐이다./김용각 대전시건축사회장·김용각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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