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16개월밖에 되지 않은 정인이는 양부모에게 학대당한 끝에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췌장이 절단되고 소장·대장이 손상돼 죽었다는 사실보다 더 무서운 건 학대 정황을 방치했던 어른들의 무심함이다.
사실, 아동학대는 잊을 만하면 다시 펼쳐지는 잔혹동화 같다.
지난해 천안에서 9세 아이를 여행 가방에 가둬서 숨지게 한 계모와, 의붓딸을 쇠사슬로 묶고 때리고 굶긴 계부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바 있다. 그 때마다 공분하고 애도했지만,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아동학대는 신고 접수 후 현장 방문조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세종지역에서도 한 해 400여 명의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되지만, 인력부족으로 초동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정인이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학대피해 아동을 정확하게 조사하고 분리 보호할 수 있는 인력과 시설이 확보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지난해 4월 아동복지 관련법을 개정, 지난해 10월부터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담당하던 아동학대조사 등의 업무를 지자체로 이관했다.
세종시도 전담 공무원 2명을 배치, 24시간 당직근무를 하고 있다.
아동학대 조사전담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는 공무원이 수행하게 된다. 시는 읍면동에서 관련 업무 경험이 있는 직원들로 우선 배치하고, 2주간 교육 후 업무에 투입했다.
세종에선 2019년 407건(학대판정 295건)의 아동학대가 신고됐고, 지난해 10월 말까지는 337건(학대판정 261건)이 신고된 것으로 집계됐다.
복지부는 아동학대전담 공무원 배치 기준을 연간 신고건수 50건당 1명으로 권고하고 있지만, 세종시의 경우 그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 기존 조사·상담원 등 5명이 하던 업무를 공무원 2명이 전담하다 보니 다양한 사례에 맞춤형 대응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더불어, 가해 의심자 현장조사에 대한 강제성이 없어 설득에 진땀을 흘리기도 한다.
세종시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아동학대 가해자의 10명 중 8명이 '부모'다. '내 아이 내가 돌보는 데 왜 조사를 받아야 하느냐'며 협조를 잘 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아동학대전담공무원과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과 함께하고, 조사거부가 심할 땐 경찰과 동행한다. 아무래도 수사기관인 경찰이 있어야 협조를 잘하는 모양이다.
피해자와 가해자, 주변인까지도 살펴야 하므로 신고 1건에 대한 조사 완료 기간은 최소 2주에서 2개월까지 소요되기도 한다.
학대 부모와 분리된 아이들이 생활하는 피해아동 쉼터도 태부족이다. 세종에는 남자아동 쉼터는 있지만 여아 쉼터는 없다. 그렇다 보니 여아의 경우 보육·양육시설로 보내진다.
시 아동청소년과 관계자는 "올해 행안부에서 2명의 인력이 추가로 배정돼, 조기 배치될 수 있도록 인사부서에 요청하고 있다"라며 "부모와 분리해야 하는 아동학대 여아 쉼터의 경우 올 상반기 설치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건만, 꽃 같은 어린 생명이 부모들에 의해 꺾이고 있다. '정인이 법이 곧 처리된다'고 하는데, 정인이는 우리 곁에 없다.
늦었지만 정부와 정치권, 시민사회가 모두 나선만큼 이제라도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길 소망해 본다.
/고미선 세종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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