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
사람들 간에 언어의 실종은 세상의 모든 것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젊은이들이 자주 찾던 은행동 으능정이 거리와 도심은 LED 조명만이 정적 가득한 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지요. 경제 문화 종교 예술 소상공인을 비롯한 자영업자 등 인간 문명의 실천적 좌표들마저 정지시켜 버렸습니다. 이 모두가 코로나가 바꾼 세상의 풍경입니다.
달포 만에 ‘G’사우나에 들른 것은 10년 넘게 다닌 단골 이발관에서 머리를 정리할 요량이었지요. 오랜만에 마주한 주인은 전화번호부터 알려달라네요. 사연인즉 1500평 규모의 G사우나는 2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지만 이제 더 버틸 수가 없어 연말까지 영업하고 폐업을 하기 때문에 이발관도 문을 닫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허허하는 탄식이 흘러나오면서 머리를 손질하는 내내 안쓰러운 마음이 들어 다른 곳에서 자리를 잡거든 연락하라고 말을 건넸지만 새로운 사업장을 다시 구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요. 어쩌면 이런저런 세상 이야기를 강독사(講讀師)처럼 전해주던 동네 사랑방 주인을 이제 만나지 못할 것 같은 객쩍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긴 이 세상 아무 곳에나 작은 바늘 하나를 세워 놓고 하늘에서 아주 작은 밀씨 하나를 뿌렸을 때 그게 그 바늘에 꽂힐 확률로 만나는 것이 인연이라고 한다면 10년이란 세월은 두 사람에게 퍽 소중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수신문에서 매년 한 해 동안 우리 사회의 압축된 모습을 보여주는 올해의 사자성어는 코로나 이외에도 정치적 사회적으로 느끼는 피로감을 반영하는 것으로 긍정적이기보다는 대부분 부정적인 경향이 있지요. 올해 유독 눈길을 끄는 사자성어는 코로나의 어려움 속에서도 모든 국민이 힘들게 버티고 있다는 것을 빗댄 '천학지어(泉?之魚) 상유이말(相濡以沫)'이었습니다.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 편에 나오는 말로 가뭄이 심했던 어느 날 길을 나선 장자는 물이 거의 말라버린 연못을 지나는데 물고기들이 등을 드러내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답니다. 장자는 물이 완전히 마를 내일쯤이면 아마 물고기들이 모두 죽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그러나 며칠 후 물고기들은 물기가 있는 한구석의 진흙에 모여 거품을 내뿜으면서 서로의 몸을 적셔주고 있는 것을 보고는 한낱 미천한 물고기들도 생사의 어려운 상황에서는 서로 의지하며 돕고 있다는 가상한 생각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고사성어이지요.
지난 1년 전대미문의 코로나로 인하여 지금 우리가 천학지어 신세이고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노력이 상유이말이겠지만 정부에서 지원하는 재난 지원금이 언제까지나 유일한 희망이고 해결책이 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 힘들어 죽겠다는 한숨 소리와 아우성뿐입니다. 새해에는 넓은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의 존재를 잊고 지내더라도 근심 걱정 없는 불여상망어강호의 건강한 세상을 꿈꾸어봅니다. /권득용 전 대전문인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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