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신축년, 상호존중과 조화로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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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신축년, 상호존중과 조화로운 세상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1-01-01 12:43
  • 수정 2021-01-01 12:47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땅이 물러 푹푹 빠지는 곳이 수렁이다. 오랫동안 죽은 식물, 토탄이 침전되고 축적되어 만들어진 습지이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빠져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벗어나기 어렵거나 곤혹스런 상황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도 수렁이라 한다. 논바닥이 무른 개흙으로 되어 있는 것은 수렁논이라 한다. 논바닥에 물이 솟는 곳이 있는 경우도 수렁논이라 불렀다. 수리 시설이 부족했던 시절, 물이 절로 솟는 곳이 있는 것은 퍽 다행스런 일이었다. 지금은 지하수 고갈로 보이지 않지만, 다랑논에도 이따금 수렁이 있었다. 수렁주위로 둔덕을 쌓아 보호하고, 그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필자가 소심한 탓일까, 겁먹고 들어가 보지 않았다. 정말로 헤어 나올 수 없는지 알지 못한다.

두렁과 두렁 안에는 벼를 심지 못한다. 위험하기도 하고 경작지를 잃는 작은 손실도 있다. 반면에 수렁으로 인하여 물관리가 아주 수월해진다. 한 뙈기 논농사가 그것으로 해결된다. 자고로 논두렁 싸움은 물꼬 싸움 아닌가? 중요하다보니, 세상사에도 진전이 없고 막혀있거나 풀리지 않을 때 물꼬 트라 한다.

수렁뿐이겠는가? 매사 수많은 지혜가 담겨 있다. 경중을 가리지 않는다. 연륜이라 따로 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단번에 이루어진 것은 없다. 부지불식간에 이어 받아 활용하고 확장하며 진보시킨다.

또 하나, 유달리 경이롭게 생각했던 것이 있다. 소나 말의 활용이다. 저리 덩치 큰 짐승이 사람에게 왜 순종할까? 죽어라고 일만 할까? 다른 생명체를 해치지 않을까? 의문이 아닐 수 없었다. 소는 동서양 공히 신석기 시대부터 가축으로 사육했다. 어느 쪽에 비중을 더 두느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유럽에서는 우유나 고기, 유제품을 얻기 위해 길렀다. 아시아에서는 농사일에 힘을 보태는 것이 우선이었다. 논밭 갈기, 써레질, 나래질, 연자방아 돌리기 등이다. 짐을 옮기거나 사람 이동수단으로도 이용한다.



편리하고 이롭게 활용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썼을까? 유년 기억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고, 지역 관습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송아지가 태어나면 얼마간 자유롭게 뛰어다니도록 놔둔다. 6개월쯤 지나 행동에 통제가 필요하면 해주는 것이 목사리다. 목에 줄 두르고 고삐를 맨다. 코 위로 앞걸이도 해준다. 1년 여 지나면 힘이 더욱 세져 사람이 감당하기 어렵게 된다. 더구나 풀 뜯어 먹도록 산이나 들에 매어 놓는 일은 주로 아이들이 한다. 소 키워본 사람 누구나 실랑이 벌인 경험이 있을 법하다. 끌려 다니며 곤란에 처하기도 한다. 이때 쇠코 뚫어 코뚜레를 끼운다. 비로소 목메기에서 성체가 되는 것이다. 뒷동산 참나무에 고삐 매놓고 코청을 뚫는다. 소가 울부짖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정확히 잘 뚫어야한다고 한다. 너무 안으로 뚫으면 소가 불편해 하고, 지나치게 밖으로 하면 통제가 어려워진다. 보지 않거나 경험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코뚜레는 단단하고 질긴 나무로 미리 원형으로 만들어 말려 두었다 사용한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단오 전후해서 나무 송곳으로 뚫었는데, 상처가 덧나는 것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콧구멍에 오줌을 싸주고 흔들어주는 모습을 보았다. 그 이유를 나중에야 알았다. 부작용을 방지하고 코뚜레에 살이 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란다. 보름 정도 지나면 상처가 아문다. 앞거리 등을 제거하고 윗목사리와 아랫목사리로 된 목사리를 끼워 준다. 위덮게는 나무로 만들기도 하고 거기에 방울을 달아준다. 나무에 문양을 새기거나 장식을 달기도 한다. 양쪽 콧줄로 목사리와 코뚜레를 연결한다. 우넘기 댕기도 매어준다. 우넘기에 고삐를 연결하는데, 이리저리 돌아도 꼬이지 않도록 사이에 도래를 이용한다. 방울을 달아주는 것은 행방을 잃었을 때 쉽게 찾고, 겁 많은 소가 다른 헛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뿐인가? 달아주는 농기구마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지혜가 담겨있다.

일에만 활용한 것은 아니다. 재산 증식 수단이기도 했다. 목돈 마련이 용이한 유동자산이다. 그저 생활에 활용만 하였을까? 이용 크기만큼 사랑도 커야 한다. 먹거리를 잘 장만해 주고 세심하게 돌봐주어야 한다. 편안한 잠자리는 기본이고, 추워지면 덕석 입혀 보온에 힘쓴다. 소는 등이 따스해야 깊은 잠이 든단다. 목욕도 시킨다. 혈액순환 돕기 위해 솔질도 해주고, 먼 길에 굽이 망가질까 신도 신긴다. 능력이나 기능, 가치도 사랑의 크기와 비례한다.

코로나19로 잃어버린 경자년 한 해가 되었다. 사회가 온통 수렁에 빠지기도 했다. 그것도 둑이 성처럼 높다. 물꼬를 아예 막아버렸다. 특히 심하지 않았나 싶다. 그 수렁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 스스로 만든 수렁, 자진해서 그 속에 빠져 든 것은 아닐까?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니 안타깝다. 나만 선이고 다른 사람은 악이다. 내가 하는 행태는 바르고 다른 사람 그것은 잘못이다. 교수들 진단도 다르지 않아 올해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가 선정되었다 한다. 역시 내가 하면 옳고 다른 사람이 하면 그르다는 말이다. 근래 신조어로 널리 사용된 '내로남불'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라 한다. 그것을 허물고 물꼬 트는 최선은 신출귀몰한 지혜나 특별한 비법에 있지 않다. 건전한 상식이면 충분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름답다.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거저, 함부로 이루어진 것은 없다. 주위와 뒤를 한번쯤 소상히 둘러보고 돌아보자. 존중받아야 할 충분한 이유와 가치가 있다. 어서 일상으로 돌아가고, 상호존중과 그것이 어우러진 조화로운 신축년 새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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