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천년 세월 한결같이 - '은 여울 사진 예술가회' 소나무 사진전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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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천년 세월 한결같이 - '은 여울 사진 예술가회' 소나무 사진전을 보고

장주영/갤러리 랑 관장

  • 승인 2020-12-29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고요한 밤, 거룩한 밤…… 흰 눈 내리는 새벽 세시,

루돌프 사슴이 이끄는 썰매에 탄 산타가 공중에서 휙 던진 선물이 마당 끝 소나무 가지에 탁 걸린다. 소나무 왼쪽 가지에 선물 하나, 가운데 쪽에 또 하나, 오른쪽 소나무 가지에 선물 한 개 더 추가. 매년 크리스마스 아침이면 기대에 찬 우리 아이들은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창가로 달려간다. 올해는 6살 된 막내가 일등으로 눈을 떠 누나와 형에게 달려가 기쁨을 알린다. 산타 선물을 가져와 열어보는 아이들의 설레임과 흥분의 모습을 보며 난 행복하다. 우리 세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부모가 되면 산타를 만났던 어릴 적 소나무에 대한 추억이 생각나리라.

육아 의무 숙제를 마친 나는 크리스마스 아침 일찍 '소나무가 있는 풍경'을 보기 위해 김용복 선생님과 대전 서구문화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12월 28일까지 '은 여울 사진 예술가회'의 전시가 있다. 대전대학교 평생교육원 신은수 교수님의 지도로 12명의 회원들의 50여 점의 소나무 사진 작품이 한데 모여 있으니 근사하다. 성탄절 기념날에 예수님과 12사도(使徒)의 거룩함을 생각하듯 지도교수님과 12제자의 긴 시간 새벽 출사 궤적을 거슬러 가보며 창조된 찰나를 담은 공들인 소나무 사진을 경건한 마음으로 맞이한다.

김달원 작가의 소나무를 담은 일출(日出) 네 작품이 장관이다. 김달원 작가의 작품은 울산 명선도에서 출렁이는 파도와 바다새 세 마리가 어둠 속에서 붉은 해를 맞이한다. 안승균 작가 또한 부안 계화도 소나무 반영(反映, reflexion) 일출 사진이 압권이다. 기장 연화리 바다 위 구름 속에서 떠오르는 태양은 윤종태 작가의 작품이다. 조미희 작가의 고성 송지호 해안의 일출은 양기(陽氣)때문에 검게 모습을 드러낸 구름과 남성의 옆모습이 재미있다. 일출과 소나무 사진은 에너지가 좋아 비즈니스 사무실이나 성공지향적 공간에 많이 걸기도 한다. 작가들도 꼭 도전하는 게 일출 사진이다.



안성 팜랜드의 하늘과 들에 운치를 더하는 소나무를 강용석 작가는 맑고 푸름으로, 한서진 작가는 새벽 안개의 고요함 속에 담았다. 울창한 소나무 숲은 강현필, 한서진 작가의 주된 작품이다. 김선진 작가의 맥문동과 솔 숲은 피톤치드를 뿜어내는 편안함을 준다. 김성수, 오승석 작가의 竹松이 눈길을 끈다. 사군자 중 하나인 꼿꼿한 대나무와 사계절 군자로 드높일 수 있는 속이 꽉 찬 소나무가 휘감고 올라가 한 곳에서 각각의 성품을 드러내고 있어 깊은 성찰을 하게 한다. 이충열 작가는 경주 바다를 배경으로 소나무를 한가운데 배치하는 용감함을 보였는데 가운데로 부터 오는 빛 산란과 반짝임, 먹물이 튄 듯한 갈매기 떼가 웅장함을 가져다주었다.

조미희 작가의 예천 부부송은 다 익어 고개를 푹 숙인 노란 벼 이삭 들판 가운데 긴 세월 희로애락을 함께 한 부부를 연상시킨다. 순간을 담은 긴박한 사진이 아닌 여유와 편안함이 느껴진다.

코로나19 거리 두기로 사람이 뜸한 전시실에서 김용복 선생님, 신은수 교수님과 따뜻한 차를 나눈다. 크리스마스 아침 소나무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니 정신까지 맑게 씻어낸 기분이다. 소나무 송(松). 한자의 유래는 태산에 오른 진시황이 소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게 되어 그 고마움에 소나무 (松)에게 나무(木)지만 공작(公)벼슬을 준 글자가 합쳐진 것이라고 한다. 견딤이 쓰임을 결정하기에 이순신 장군은 나라를 지키는 거북선을 소나무로 제작하였다. 소나무는 가을에 낙엽으로 떨어지는게 아니라 봄에 새순이 나오고서야 떨어지는 잎을 가졌기에 일년 내내 푸르다. 앙상한 가지만 보이는 겨울에 푸른 소나무는 우리들의 눈길을 끈다.

'후조(後凋), 뒤늦게 시든다.' 논어에 나오는 말이다.

子曰 歲寒然後 知 松栢之後凋也(자왈 세한연후 지 송백지후조야)

공자가 "추운 겨울이 된 이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였다.

여름에는 모두가 푸르다. 평소에는 군자나 소인이나 차이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어려운 시절이 오면 군자의 진면목이 드러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지금 모두가 힘든 겨울이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거침없이 푸르고 변함없이 서 있는 소나무이고 싶다. 소나무는 좋은 환경에서는 곧게 자라고, 양분이 부족하고 나쁜 환경에서는 나무가 휘어지고 산야의 돌 아래로 깊게 뿌리를 내린다. 철갑을 두른 단단하고 두꺼운 몸통의 휘어진 소나무가 최고의 몸값을 자랑한다. 악전고투한 상처와 풍파의 크기만큼 흔들리고 휘어진 소나무는 견딤과 사명감으로 더 큰 승화를 이루어 명품으로 성장한다.

'갤러리 랑'에서는 지난 여름 '천 년의 향기, 소나무가 있는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은여울 사진 예술가회 신은수 교수님을 한 달 동안 초대했었다. 지금은 역대 대통령 휘호와 훈장을 한창 전시 중이지만 지난 여름 신교수님의 소나무 향기의 여운이 아직도 생생하다. 서구문화원을 나와 김용복 선생님을 모시고 세종 도토리숲 방향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도심의 빡빡한 아파트를 벗어나니 가슴이 확 트인다. 곳곳마다 기품있는 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겨울이 되어야 비로소 드러나는 소나무의 푸름을 보며 김기현 님의 시가 뇌리를 스친다.



소나무

두보 김기현



억만 년이 지나도

사시사철 푸르고

몸과 마음이 이팔청춘인

저 소나무 같이



어느 누가

허튼소릴 지껄여도

은은한 솔향기 풍기며 서 있는

저 소나무 같이



세상이 뒤집혀도

푸르른 하늘만 바라보며

바위처럼 생각이 변함없는

저 소나무 같이



서슬 퍼런 바람도

아픈 세월도 다 견뎌내며

거침없이 꿋꿋하게 걸어가는

저 소나무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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