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주 충남대 교수 |
물론 다사다난 중에 불길한 소식만이 전부는 아니다. 목숨이 달린 위험한 상황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의료인의 사명감, 사지를 향하여 한걸음에 달려가는 사람들의 가슴 뭉클한 헌신도 있었다. 공포스런 n번방 성범죄를 양지로 끌어내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고 법제화한 것도 불행 중 다행이었다. 팬데믹 때문에 기후변화와 환경파괴로 인한 재앙이 임박했으며, 따라서 인식의 대전환을 마음속에 각인했다는 점도 긍정적인 측면이다. 무엇보다 역병 때문에 생계가 곤란해진 이웃에 대한 걱정은 진심이다. 흔히들 두터운 아파트 벽 뒤에서 무심하다고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대다수 우리는 언제든지 기꺼이 이웃을 도울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 첫머리에서 1914년 1차세계대전 중 프랑스 플랑드르 지방에서 일어났던 기적 같은 사건을 말한다. 전쟁이 시작된 지 5개월째, 10만명의 군인들은 쥐와 해충이 우글거리는 숙소, 변변한 화장실이 없어서 곳곳에 오물냄새가 진동하는 참호, 양 진영사이 무인지대에는 매장 못해 동료 시체가 썩어가는 전장에서 한겨울 추위에 떨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크리스마스 트리의 촛불이 밝혀졌고, 캐롤 소리가 들려왔다. 불과 24시간 전만 해도 적이었던 그들은 그때 참호에서 빠져나와 서로 악수를 나누고 담배와 비스켓을 건넸으며 가족사진을 꺼내 보여주었다. 병사들은 대의명분을 위해 싸우는 영웅적 용기 대신, 다른 종류의 용기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면서 서로를 위로할 용기를 선택한 것이다. 이 사건은 두고두고 희망의 이유가 되었다.
세계적 포럼인 캐나다의 멍크 디베이트는 2015년 스티븐 핑커, 매트 리들리, 알랭 드 보통, 말콤 글래드웰과 같은 세계적인 석학들을 초청하여 "인류는 과연 진보하는가"라는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벌였었다. 이들 중 핑커는 인류가 진보하고 있다는 증거를 10가지 들고 있다. 첫째, 인간의 평균 수명은 150년 전만 해도 30년이었지만, 지금은 70년이고, 두 번째 천연두와 우역이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질병을 퇴치했으며, 세 번째, 200년 전만 해도 세계인구의 85%가 극심한 빈곤 속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10%로 내려갔고, 네 번째, 작은 내전은 지속되지만 강대국 간의 파괴적 전쟁은 지난 60년 동안 한 차례도 없었다는 점, 이외에도 안전, 자유, 교육, 인권, 성평등, 지능의 향상을 인류 진보를 증명하는 데이터로 제시한다.
물론 핑커의 맞수인 보통이나 글래드웰은 핑커의 데이터 기반 낙관주의를 비웃으면서, 기후변화나 환경파괴로 인한 재앙을 경고한다. 그러나 비록 네 사람 석학들은 서로를 공격하고 비난하고 조롱하기도 했지만, 실은 한결 같이 인류의 미래에 대한 똑같은 우려와 희망을 공유하고 있었다.
희망할 수 있는 능력은 누구나 갖고 있으면서도, 누구나 발휘하는 능력은 아니다. 희망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능력이다. 오바마는 최근 인터뷰에서 라인홀드 니버의 교훈을 인용한다. "세상의 잔혹함, 탐욕, 폭력적인 현실을 선명하게 직시하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보존하는 것, 이는 의지력과 믿음의 도약을 필요로 하는 행위다" 새해엔 희망할 용기를!! 김명주 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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