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무형문화재 11호 이정오 단청장. |
대전시 무형문화재 11호 이정오 단청장은 50년 외길을 걸어왔다. 이 단청장의 손길이 닿은 건축물만 대략 1000여 곳이라 하니, 단청 하나로 이름을 알려온 대가의 삶은 마치 단청처럼 변치 않는 생명력을 지닌 듯 하다.
이정오 단청장은 올해 공주 학림사 템플스테이관 단청 작업 중이다. 2018년에는 대적광전, 2019년에 설법전에 이어 3년째 학림사 작업에 몰두해 있다. 다만 올해 마무리 해야했던 템플스테이관은 코로나로 인해 내년쯤 작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새로 지은 건물에 단청을 입히는 과정은 1년의 시간이 꼬박 투입된다. 물론 개인이 아닌 10여 명의 팀을 이뤄 작업하지만, 단청장은 전체 작업을 진두지휘하며 빈 건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에 있다.
이정오 단청장은 "인간문화재가 지은 건물도 수준급이지만, 학림사 단청은 근래 내 작업 중 최고의 단청을 했다고 자부한다. 색이며 배열, 무늬 등 좋은 작품을 이곳에 남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학림사 단청은 정제된 화려함이 핵심이다. 사찰과 사찰을 둘러싼 자연 속에서 도드라짐 없이 융합되는 조화미가 빼어나다.
그는 "사찰에는 연꽃, 성균관에는 암행어사를 뜻하는 매화, 왕이 기거했던 경전은 다산과 수명, 평안에 관련한 무늬를 넣는다. 단청을 볼 때는 색의 조화와 함께 건물을 상징하는 특징을 찾다 보면 이해도가 올라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 번 단청을 그린 곳이라면 생애 두 번은 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세월이 흘러도 쉽게 바래거나 변질되지 않는 단청만의 고유 특징 때문이다. 옛날에는 석채(돌)나 송광사 뒤편에서 채굴 가능했던 푸른 흙 청토를 이용해 말풀을 써서 색을 냈다. 석채나 청토를 쓴 단청은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요즘은 화학 재료를 쓰다 보니 20~30년 후면 새로운 작업을 해야 하는 곳도 더러 생기고 있는데, 이 단청장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도 전통 단청의 변질에 있다.
이정오 단청장은 "단청을 새롭게 입히다 보면 역사적인 문양도 없어질 수 있다. 단청은 지역마다 바탕색이 다르다. 오래전 신라, 고구려, 백제도 모두 달랐다. 그런데 최근 단청을 국가 한 곳에서 관리하다 보니, 단청자가 지역을 넘나들며 단청을 그리게 되면서 중성 단청이 됐다"며 "현재는 지역별로 단청을 정립하고 있지만 수정하고 보완해야 할 점은 여전히 남았다"고 말했다.
50년 단청 외길을 걸어온 이 단청장의 미래는 "내가 받은 맥을 끊이지 않게 제자들을 양성하고, 시 무형문화재로 시민들에게 단청을 향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간결하게 설명한다.
맥을 이어줄 전수자는 2명, 이수자들도 10여 명에 달하다 보니, 외롭지만 묵묵하게 걸어온 무형문화재로서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정오 단청장은 "색도 양식도 지역 전통에 맞게 이어가면 수십 년이 흘러도 이어진다. 획일화되지 않는 단청의 세계를 걸어 가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정오 단청장 인정 20주년을 맞아 기획된 '장엄, 극락을 그리다' 전시는 대전전통나래관에서 31일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해미 기자 ham7239@
이정오 단청장이 2018년 작업한 학림사 대적광전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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